성서연구

[창세기 6] 창세기 족보의 의미 - 창세기 4:17~5:32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9-13 21:12
조회
2462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6 (9/13) 창세기 족보의 의미 - 창세기 4:17~5:32



1. ‘에덴의 동쪽’ 문명의 계보학 - 4:17~24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쉼이 없는 땅’(놋)에서 유리하였다. 가인이 에덴의 동쪽 놋에 살았다는 것은 그와 같은 인간 실상의 은유이다. 쉼 없이 유리방황하는 인간은 허무함에 몸부림칠 수밖에 없었고 결국 그 허무함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할 수밖에 없었다. 카인의 후예에 관한 이야기는 허무한 삶을 극복하고자 한 인간 문명의 계보학이다.

유리방황하던 가인은 도시를 건설한다. 이로써 정착 문명이 시작된다. 물론 앞서 그가 농사를 지었다는 사실이 정착농경문명을 시사하고 있다. 하지만 신화란 앞뒤 아귀가 논리적으로 일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전후문맥을 뛰어넘는 이야기가 툭 튀어나오는가 하면 같은 이야기가 계속 반복되기도 하는 것이 신화적 서술의 한 특징이다. 여기서 도시 건설은 정착문명을 훨씬 더 분명하게 시사한다. 그 후손들의 이야기는 그 문명의 단면을 더 구체적으로 시사한다. 야발은 유목민의 조상이 되었다. 정착문명과 다른 것이지만 그 또한 인간 삶의 중요한 한 형태이기에 이 이야기에서는 논리적 모순관계를 따지지 않고 인간 문명의 한 단면을 이렇게 전한다. 유발은 수금을 타고 퉁소를 부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인위적 예술의 등장을 말한다. 인간의 미적 감각은 태고적 시원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악기를 제조하고 인위적으로 자연을 모방하는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는 것은 인간 사회가 더욱 복잡해지고 고도화되었다는 것을 시사한다. 두발가인은 구리나 쇠를 가지고 온갖 기구를 만드는 사람의 조상이 되었다. 도구의 탄생을 시사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문명의 시작을 가장 분명하게 시사한다. ‘가인’이라는 이름 자체가 사실은 ‘대장장이’를 뜻한다. ‘두발의 가인’은 사실상 그 가인의 적장자임을 말한다.

그런데 이어지는 생뚱한 라멕의 이야기는 무엇을 뜻할까? 라멕은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죽였다는 것을 자랑하며 “가인을 해친 벌이 일곱 갑절이면 라멕을 해치는 벌은 일흔일곱 갑절이다”라고 선언한다. 이 선언은 하나님을 떠난 인간 문명의 악한 속성을 말한다.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인간은 과감하게 제거하고 가혹한 보복을 감행하는 인간 사회의 속성이다. 라멕은 이 선언을 자신의 아내들에게 선포한다. 강력한 남성주의, 가부장주의를 시사한다.      


2. ‘하나님의 사람들’의 계보학 - 4:25~5:32


가인의 계보와는 다른 아벨을 대신한 계보 이야기가 새롭게 등장한다(4:25~26). 하나님을 떠난 인간들의 문명이 발전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이름을 예배하는 사람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말한다. 셋은 ‘허락하다’를 뜻하며 에노스는 아담과 마찬가지로 ‘사람을 뜻한다. 하나님의 뜻으로 허락된 사람의 역사가 다시 시작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창세기 5장은 마치 앞의 가인의 계보를 모르는 듯이 하나님의 사람들 계보를 비중있게 전한다. 이 계보 이야기는 서두에서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들어진 사람을 환기하고 있다. 인간 사회에서 사라지지 않는 희망, 구원의 가능성을 말하려는 것이다. 흔히 문자주의적 성서해석에서 창조의 시점을 환산하는 근거로 활용되는 이 계보 이야기에서 아담의 후손들은 어마어마한 장수를 누린다. 므두셀라는 무려 969년을 살았다. 가장 짧게 산 에녹은 365년을 살고 하늘로 올라갔다. 1년 365일과 그 연수가 일치한다는 사실이 의미심장하다. 실제로 그렇게 오래 살았을까? 창세기 기록자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들의 무병장수, 만수무강을 말하고 싶었던 것일 게다. 오늘날 우리의 관념으로 보면 그 수명이 납득이 되지 않지만 고대 신화에서는 몇 천년 몇 만년까지 장수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자주 등장한다. 단군도 2천년을 넘게 산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성서 기록자는 당대의 관점에서 상당히 합리적으로 그 나이를 축소해서 말하고 있다. 성서에서 이후에 이어지는 나이에 관한 기록은 시대를 지날수록 축소되는 경향이 있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면서 점점 죽음에 가까이 이르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이 계보에는 가인의 계보와 중첩되는 인물들이 등장한다. 에녹과 라멕이 그들이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전혀 다르다. 여기서는 철저히 하나님의 사람들 계보학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맡고 있다. 라멕은 노아를 낳았다. ‘위로’ 또는 ‘푹 쉬다’를 뜻하는 노아의 탄생은 희망의 표징이다. 최초의 포도 농사꾼이자 포도주를 남든 것으로 알려진 노아(창세기 9:20)의 이름 기원이 그의 역할과 모종의 상관관계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수고하고 고통을 겪어야 하는 현실에서 진정한 위로가 될 존재로 노아를 묘사함으로써, 강력한 희망의 표징으로 삼고 있다.



* 다음 주제는 “노아의 홍수”(창세기 6~10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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