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7] 홍수 이야기 1: 인류의 타락과 홍수 - 창세기 6:1~7:24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9-20 21:10
조회
2092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7 (9/20) 홍수 이야기 1: 인류의 타락과 홍수 - 창세기 6:1~7:24



1. 초인적 존재의 탄생과 인류의 타락 - 6:1~8


역사는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타락과 구원의 희망이라는 이야기 구조는 계속 되풀이된다. 하나님의 아들들과 사람의 딸들의 결합 이야기로 또 한 바퀴를 시작한다.

신적 존재와 인간적 존재의 결합 이야기는 고대 신화에서 흔히 등장하는 이야기다. 단군신화도 그와 같은 이야기를 기본구조로 하고 있다. 일반적인 의미에서 이와 같은 이야기는 인간의 가능성과 한계를 동시에 시사한다. 천상의 존재로서 인간의 특성과 동시에 지상의 존재로서 인간의 특성을 동시에 함축한다. 그러나 그 맥락에 따라서 강조점의 편차가 생긴다. 성서에 등장하는 이 이야기는 어디에 초점이 있는 것일까? 인간의 타락을 말하는 대목에서 등장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타락한 인간의 속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천상적 존재의 속성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데 초점이 있는 것 같다. 하늘의 존재로 자임하는 초인적 존재의 등장을 말한다. 네피림의 존재는 그 사실을 더욱 강력하게 뒷받침한다. 거인족 네피림은 보통사람이 어찌해볼 수 없는 강력한 존재를 말한다. “생명을 주는 나의 영이 사람 속에 영원히 머물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은 살과 피를 지닌 육체요,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라.” 이 말은 하나님으로부터 생명을 부여받았지만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인간의 속성을 말하는 것이 분명하지만, 이어지는 네피림 이야기와 인간 타락 이야기에 비추어볼 때 그 유한한 인간이 무한한 신적 존재를 흉내 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리고 그와 같은 행위의 악한 속성을 시사한다.

그와 같은 인간들로 말미암아 세상은 죄악으로 가득 찼다. 하나님은 인간을 만드신 것을 후회한다. 그것은 하나님이 실패를 자인하는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편 전지전능한 하나님의 이미지와는 다른 이 이야기는 인간의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한다. 인간은 기계적 존재로 지음 받은 것이 아니라 스스로의 의지를 선용할 수도 악용할 수도 있는 존재로 탄생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런데 지금 인간은 그 의지를 악용했다고 하나님은 탄식한다. 하나님은 그 인간에게 책임을 물을 작정이다. 이번에는 단순히 질책하거나 경고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아예 그 인간 자체를 소멸시키는 징벌을 내리기로 작정한다. 그런데 잘못을 범한 인간을 징벌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땅 위의 모든 것들을 쓸어버리겠다고 한다. 어째서 애꿎은 다른 피조물까지 징벌의 대상이 된단 말인가? 그것은 인간의 악행으로 창조의 질서 자체가 완전히 교란되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인간의 무분별한 탐욕으로 생태계 자체가 교란된 오늘의 현실을 예고하고 있는 것 같다.


2. 소멸되지 않은 희망, 노아 - 6:9~22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다고 했던가? 의롭고 흠이 없는 사람 노아의 존재는 그 희망을 말한다. 하나님은 당신과 늘 동행하던 노아에게 재앙을 피할 길을 알려준다. 장차 홍수를 일으켜 땅의 모든 존재를 소멸시킬 작정이므로 그 홍수를 피할 수 있도록 거대한 방주를 만들라고 한다. 구원의 방주로서 교회의 이미지는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


3. 마침내 다가온 재앙, 홍수 - 7:1~24


살아 있는 온갖 것들이 구원의 방주에 오른다. 노아의 아들들과 그 며느리들 뿐 아니라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이 방주에 오른다. 그런데 좀 이상한 점이 있다. 방주에 오른 동물들의 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앞에서는 모두 한 쌍씩으로 되어 있는데, 이 대목에서는 정결한 동물은 일곱 쌍씩 부정한 동물은 두 쌍씩으로 되어 있다. 이 사실은 서로 다른 이야기가 하나의 이야기 가운데 엉켜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 성서의 최종 편집자는 홍수가 그친 다음에 노아가 정결한 동물로 제사를 드린 것을 유념하여, 정결한 동물과 부정한 동물의 수치가 다른 전승을 삽입한 것이다.

어쨌든 노아가 그처럼 채비를 다 마치고 난 후 하늘에서 비가 쏟아져 홍수로 땅이 뒤덮인다. 뿐만 아니라 땅 속에서 물이 터져 차오르기까지 한다. 성서에서 물은 양가적인 의미를 지닌다. 생명의 근원 역할을 하는가 하면 혼돈과 공포를 상징하기도 한다. 노아의 홍수 이야기는 혼돈과 공포의 상징으로서 물의 의미를 보여준다. 이 이야기가 검증 가능한 역사적 사실일까? 성서를 문자적으로 믿고 싶어 하는 사람들은 틀림없는 역사적 사실이라고 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전 세계가 홍수로 뒤덮인 사실은 확인되지 않는다. 성서의 배경과 관련해 말하면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국지적인 홍수와 해일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이집트 나일 강의 범람도 그 한 배경일 수 있다. 고대 수메르의 신화에는 노아 홍수 이야기의 원형으로 추정되는 이야기가 있고, 이집트 신화에도 그 단서로 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있다. 뿐만 아니다. 세계 여러 지역의 신화나 설화에서도 홍수 이야기는 자주 등장한다. 그것은 공통적으로 겪었던 대홍수의 상황을 반영하는 것일까? 혹 빙하기가 끝나면서 물이 범람한 사태를 경험한 기억이 반영되어 있는 것일까? 그 사실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매우 국지적일 수도 있고, 전면적일 수도 있는 어떤 자연재해를 단순한 자연재해로 보지 않고 인간의 타락과 연계시켜 이해한 성서의 관점이 독특할 뿐이다. 이것은 인간 사회의 문제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고 있는 성서적 통찰의 한 특성을 잘 드러내준다.



* 다음 주제는 “홍수 이야기 2: 홍수와 무지개 사이”(창세기 8:1~9:17); “홍수 이야기 3: 노아의 후손들”(창세기 9:18~10:3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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