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8] 홍수 이야기 2: 홍수와 무지개 사이 - 창세기 8:1~9:17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9-27 21:18
조회
2179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8 (9/27) 홍수 이야기 2: 홍수와 무지개 사이 - 창세기 8:1~9:17



1. 홍수의 끝 - 8:1~19


인류의 타락으로 인한 하나님의 징벌로서 홍수가 끝났다. 이로써 인류는 또 다시 새로운 역사를 맞이하게 된다.

물이 점점 빠지면서 노아의 방주는 아라랏 산에 머물게 되었다고 성서는 전한다. 한글 성서는 한결같이 아라랏 산이라고 확정하고 있다. 이는 방주가 기착한 지점이 높은 산 한 지점이이라고 보는 전통을 따른 것이다. 열성적인 성서고고학자들은 그 아라랏 산을 확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그 덕분에 아라랏 산으로 불리는 몇 개의 산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방주 모양의 흔적이 있는 산, 또는 그 파편으로 간주되는 유물들이 발견된 산이 그렇게 아라랏 산으로 불린다. 그러나  성서의 정확한 원문은 아라랏 산지를 말한다. 특정한 지점이 아니라 상당히 광범위한 지역을 말한다. 그저 높은 산악지대에 배가 머물렀다고 이야기하고 있는 정도이다. 그곳은 오늘날 터키의 아르메니아 산악지대를 말한다. 입증가능한 역사적 사실이라면 확인해서 나쁠 것 없지만, 그 사실이 확인되어야만 성서의 진정성이 확인되는 것은 아니다. 홍수 이야기의 진정성은 결국 파국에 이를 만큼 인류가 타락했다는 사실, 그러나 파국 이후에 새로운 역사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전하는 데 있다.

배가 머무르자 노아는 새들을 날려 보내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확인한다. 첫 번째로 보낸 새가 까마귀다.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다. 다시 비둘기를 날려 보냈더니 그 비둘기는 올리브 잎을 물고 돌아 왔다. 오늘날 평화의 상징으로 간주되는 올리브 잎을 문 비둘기의 이미지는 여기에서 비롯된다. 그 이미지로 까마귀는 잊혀지거나 혐오스러운 이미지로 남게 되었다. 그러나 신화적 상징구조를 더 깊이 들여다볼 것 같으면 사실 결정적 역할을 한 것은 까마귀다. 우리의 고대 신화를 비롯 많은 고대 신화에서 까마귀는 태양을 상징한다(고구려의 삼족오, 오딘의 까마귀). 까마귀의 등장은 햇빛을 상징한다. 여기서 까마귀가 중요한지 비둘기가 중요한지 논란을 할 필요는 없다. 홍수가 물러가고 햇빛이 내리비치게 된 상황을 묘사하는 옛 이야기 방식이라는 것을 이해하면 그만이다.

홍수가 그치고 물이 마른 것이 확인되자 방주에 올랐던 모든 생물이 다시 땅 위에 내려와 새로운 삶을 시작한다.


2. 노아의 제사 - 8:20~22


땅 위에 내려온 노아는 정결한 짐승들과 새들을 골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다. 하나님은 이 제사를 받는다. 그런데 이 제사를 받는 하나님의 모습이 참 ‘인간적으로’ 그려졌다. “주께서 향기를 맡으시고서, 마음속으로 다짐하셨다.” 제물을 받고 인간을 봐주기로 작정하였다는 것처럼 보인다. 그렇게 다짐한 내용이 또 흥미롭다. “다시는, 사람이 악하다고 하여서, 땅을 저주하지는 않겠다. 사람은 어릴 때부터 그 마음의 생각이 악하기 마련이다. 다시는 이번에 한 것 같이, 모든 생물을 없애지는 않겠다.” 땅을 멸망시킨 이유가 되었던 사실이 이번에는 다시 멸망시키지 않겠다는 유예의 근거가 되고 있다. 하나님은 변덕장이일까? 인간의 제물 여하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하시는 분일까? 아마도 많은 사람들은 실제로 하나님을 그렇게 이해하는 것 같다. 천국에 갔다 왔다는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안타까워하면서 상자 하나를 보여주더란다. 그 상자 안에는 자신이 미처 구하지 않아 하나님께서 베푸시지 못한 목록들이 잔뜩 들어 있더란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과연 그런 하나님일까? 이 진술은 일종의 신학적 사고의 전환을 의미한다. 끊임없이 선악이 혼재하는 인간 사회 현실에 대한 성서 기자의 통찰인 것이다. 홍수로 악이 일소되었다고 생각했는데도 그치지 않는 악의 현실을 두고 어떤 답변을 찾고 싶었을 것이다. 절대 선도 절대 악도 아닌 인간 삶에 대한 매우 현실적인 통찰일 수 있다.            



3. 하나님과 노아의 언약 - 9:1~17


하나님은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도록 한다. 창세기 앞부분에 나오는 말씀이 여기에서 다시 반복되고 있다. 그런데 창세기 앞부분 이야기와 다소 다른 이야기가 등장한다. 도물들까지 인간의 먹을거리로 준다는 사실을 확인해주는 말이다. 역시 이 대목에 이르러 성서 기자가 매우 현실적인 신학적 판단을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채소뿐만 아니라 동물을 포함하여, 살아 있는 모든 존재는 또 다른 살아 있는 것들을 먹이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통찰이다. 그러나 그것은 무한정 허용되지 않는다. 그것은 엄격하게 제한되어야 한다. 피에 관한 언급은 허용된 먹이사슬이 일정하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피는 모든 개체생물의 피는 생명을 상징하기에 어떤 피도 먹거나 함부로 흘리게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살생이 불가피하다 하더라도 그것은 온 생명의 존속이 보장되는 한에서만 허용된 것일 뿐이다. 이 대목은 그 사실을 강조한다. 아울러 인간생명의 존엄함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다시는 땅을 파멸시키지 않겠다는 약속의 징표로 무지개를 보여준다. 이미 앞서 다시는 멸망시키지 않겠다고 했으니 족한 것이지만, 그것을 끊임없이 환기시키는 장치를 둔 것이다. 무지개를 약속의 징표로 둔 것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세계에서 다투던 사람들이 활을 두고 맹세한 사실을 연상시킨다. 활을 뜻하는 고대 악카드어 ‘카샤투’와 활/무지개를 뜻하는 히브리어 ‘케쉐트’는 동의어이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화해, 인간들,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 사이의 화해를 상징한다.




* 다음 주제는 “홍수 이야기 3: 노아의 후손들”(창세기 9:18~10:32)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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