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창세기 15] 낯선 이야기, 용사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 창세기 14:1~24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12-27 22:17
조회
2603
천안 살림교회 수요 성서연구 10 <창세기 읽기>  

2006년 6월 21일부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최형묵 목사


15 (12/27) 낯선 이야기, 용사 아브라함과 멜기세덱 - 창세기 14:1~24



1. 왕들의 전쟁(14:1~12)


아브라함의 이야기 가운데 끼어 있는 왕들의 전쟁 이야기는 성서 가운데 가장 해명하기 어려운 내용이다. 자료 자체가 특수할 뿐 아니라, 그 내용이 족장 아브라함과는 썩 잘 어울리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에 등장하는 나라들과 왕들의 이름을 다 확인할 수 없으나, 확인할 수 있는 일부 이름들을 통해 그 상황을 대략적으로 가늠해볼 수 있다. 먼저 언급되고 있는 큰 나라들의 동맹에서 확인 가능한 나라는 시날과 엘람이다. 이 둘은 모두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큰 나라들로, 시날은 바빌론을 엘람은 수메르와 바빌론 사이에 영향력을 떨쳤던 나라이다. 이 이야기에서 엘람이 동맹을 주도하고 있다. 아마도 이 상황은 메소포타미아에서 아직 바빌론이 본격으로 주도권을 잡기 이전 상황인 것으로 보인다. 어쨌든 이 강대국들의 동맹에 맞서 가나안 지역의 작은 왕국들이 반기를 들었다고 성서는 전한다. 성서는 이 작은 나라들이 롯이 자리를 잡은 염해(곧 사해) 지역의 평원에 있는 나라들이라 말한다. 서방으로 영향력을 확대하던 메소포타미아 지역 강대국의 동맹에 맞선 가나안 지역 약소국의 동맹은 사실 비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왕국의 면모를 갖추고 있었는지 그와 같은 전쟁이 있었는지 의문이지만, 성서가 전하는 대로 그 상황을 가정한다면 어불성설에 다름없는 대결이었을 것이다. 동방의 강대국 동맹은 서방의 약소국 동맹을 정벌하러 나선다. 그런데 느닷없이 강대국 동맹은 그 싯딤 골짜기의 약소국 동맹을 정벌하기에 앞서 그 남동지역 약소국들부터 정벌한다(5~7절). 그리고 이어 싯딤 골짜기 곧 사해지역의 약소국들을 정벌한다. 이들 나라들은 무참히 짓밟히고 소돔에 살던 아브람의 조카 롯도 포로로 잡혀간다. 바로 그 사건이 그 전쟁과 아브라함을 연계시키는 단서가 된다.



2. 용사 아브라함과 롯의 구출(14:12~17; 21~24)


마므레 상수리 숲 근처에 살던 아브람은 조카 롯이 붙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의 사병 318명을 이끌고 추격한다. 다마스쿠스 부근 호바에 이른 아브람은 야음을 틈타 기습작전을 벌여 군자적 성공을 거둔다. 롯을 포함한 포로와 노략당한 재물들을 되찾아 개선한다. 개선하는 아브람을 소돔 왕이 반기고, 그 소돔 왕은 아브람에게 노획물을 다 가져가라고 한다. 노획물을 차지하는 것은 승자의 당연한 권리였다. 그러나 아브람은 자신과 동행한 군대의 몫을 제외하고 스스로는 일체의 노획물을 취하지 않는다.

이 이야기에서 아브람은 완전한 용사의 모습이다. 아브람은 여러 가지 면에서 후대의 사사 모습을 닮았다. 소수의 병력을 이끌고 기습작전을 펼쳐 적군으로부터 승리를 거두는 모습도 그렇고, 전리품을 취하지 않는 것도 그렇다. 용사 아브람의 이야기는 사사 기드온의 이야기와 매우 닮았다. 도대체 의문투성이 이야기이지만, 이 이야기는 나름의 의도를 지니고 있다. 이 이야기는 아브라함이 동방의 강대국 군대를 물리치고 가나안의 약소국들을 구출해냈음을 강조한다. 이 이야기가 완성될 즈음 유대인은 동방의 대제국 바빌론에 예속되어 있었다. 바로 그와 같은 상황에서 용사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유대인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을 것이다. 성조 아브라함은 일찍이 동방의 제국의 군대까지도 물리쳤다고 믿은 데서 커다란 자긍심을 가졌다. 이 이야기가 더더욱 중요하게 강조하고 싶었던 것은 물리적 힘의 우위보다 더 강한 하나님의 약속과 그에 대한 신뢰였을 것이다.            



3. 살렘 왕 멜기세덱과 아브라함(14:18~24)


약소국을 유린한 강대국을 물리친 정의의 용사로서 아브라함의 면모는 살렘 왕 멜기세덱으로부터 축복을 받았다는 이야기에서 다시 한번 강조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제사장이자 살렘 왕인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축복하자, 아브람은 얻은 것의 십분의 일을 멜기세덱에게 바친다.

신비한 인물 멜기세덱과 아브라함 이야기는 복합적인 의도를 함축하고 있다. 살렘은 훗날 예루살렘으로 간주되고 있고, 히브리 전통에서 살렘은 ‘평화’로 해석되어 왔다. 멜기세덱은 ‘정의로운 왕’을 뜻한다. 평화의 도시를 다스리는 정의로운 왕이 아브람을 축복했다는 것은 아브람 역시 그와 같은 의미로 그 존재를 확인받았다는 것을 뜻한다. 이 이야기는 다윗왕이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삼고, 그 언덕에 솔로몬이 성전을 건축한 사실을 정당화하고 있다. 다윗이 예루살렘을 도성으로 삼을 당시 예루살렘은 이방인 여부스족의 땅이었다. 그 당시로서는 이스라엘 역사와 무관한 곳이었다. 그러나 아브람 이야기는 이미 오래 전부터 그 땅이 도성으로서, 성지로서 의의를 지니고 있었다는 것을 은연중 강조한다. 아브람이 바친 십일조 역시 예루살렘 성전에 드려진 십일조의 기원을 역설하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까닭에 멜기세덱은 다윗 왕조의 전형으로 간주되었다(시편 110편).

신약성서는 멜기세덱을 영원한 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의 예표로 설명한다(히브리서 7장). 애초 이교의 사제였던 멜기세덱이 아브람에게 베푼 축복은 하나님의 축복이 지닌 보편성을 말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신약의 히브리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의 보편성을 멜기세덱의 축복에 유비하여 해명하고 있다.




* 다음 주제는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린 언약”(창세기 15:1~21)입니다.
전체 1
  • 2006-12-28 02:44
    아브라함을 공부하면서 저에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있습니다.
    rn어찌, 저런자가 믿음의 열조로 추앙받는가 하는것 이지요....
    rn오늘 그 해답의 실마리가 보였습니다.
    rn그가 위대한 것이 아니고, 그를 조상으로 인정하고 섬기는
    rn바다의 모래와 같은 값없고 흔한 무리들이
    rn위대하였다는 것이지요......
    rn갑자기, 어느 영화의 대사가 떠오릅니다.
    rn"강한자가 남는것이 아니고, 오래남는자가 강한자가 된다"
    rn빛없는 세상에, 힘없는 민초들에게 딱 어울리는 말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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