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섬뜩한 진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8-09-04 21:29
조회
3693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15번째 원고입니다(080904).


섬뜩한 진실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도스토예프스키의 『카라마조프가 형제들』에 보면 「대심문관」이라는 극시가 삽입되어 있다. 16세기 어느 날 스페인 세빌랴에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그 현장은 바로 전 날, 소위 신의 영광을 위하여 백 명에 가까운 이교도들을 화형에 처한 곳이었다. 예수 그리스도는 1500년 전 초라한 모습 그대로 그 현장에 나타난다. 사람들은 환호하고, 관 속에 누워 장례를 기다리던 소녀가 일어난다. 그 동요의 현장을 바로 어제 이단자들을 처형한 장본인인 대심문관 추기경이 목격한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죄인’으로 체포하여 이단 재판소 건물 안 감옥에 가두고 심문한다. “너는 우리를 방해할 목적으로 이 곳에 나타난 것임에 틀림없어!” 그렇게 말문을 연 대심문관은 예수 그리스도가 광야에서 악마에게 시험받을 때 주고받은 세 마디의 이야기를 환기하며 본격적으로 심문을 펼친다.


첫 번째 유혹을 거부한 사실을 두고 말한다. “너는 인간의 자유를 위하여 돌멩이들을 빵으로 만든 것을 거부했다. 그러나 봐라! 본래 비천하고 어리석은 인간은 하늘의 빵과 자유를 그리워하지 않는다. 인간은 그 자유를 두려워하며 견디기 어려워한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들을 노예로 삼아도 좋으니 제발 먹을 것을 달라고 외친다. 너는 어리석게도 그 외침을 외면하고 말았다. 결국 지상의 빵을 버리고 되지도 않는 천국의 빵과 자유를 약속해서 사람들에게 헤어나지 못할 무거운 짐만 지워준 거 아니냐?”


두 번째 유혹을 거부한 사실을 두고 조롱한다. “인간을 다스릴 힘은 이 지상에 세 가지 힘 밖에 없다. 기적과 신비와 권위다. 악마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려보라고 했을 때 너는 그것을 물리쳤지만 그 유혹을 물리칠 힘이 다른 보통 사람들에게도 있으리라 생각하느냐? 인간의 본성이란 기적을 부정하게끔 되어 있지 않다. 가장 심각하고 가장 괴롭고 가장 근본적인 의혹의 순간에 자기의 자유로운 양심의 결정에 따라서 행동할 수 없게 되어 있다. 인간이 기적을 원하지 않을 때 인간은 신까지 동시에 부정하려 든다는 것을 너는 몰랐다. 한마디로 너는 인간을 너무 과대평가 했다. 인간은 본래부터 반역자이면서 또한 노예라는 것을 몰랐어, 잘 판단해 봐라!”


마지막으로 권세의 유혹을 물리친 예수 그리스도를 두고 역시 조롱한다. “케사르의 검을 손에 넣을 수 있었는데 왜 그걸 물리쳤느냐? 인간은 숭배할 가치가 충분한 사람과 양심을 맡길 만한 사람이 누구인지, 그리고 지상의 모든 인간이 오직 하나로 개미처럼 결합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가를 고민한다. 이 고민이야말로 제3의 고민이자 동시에 마지막 고민이다. 케사르의 자주 빛 옷을 수중에 넣었을 때 비로소 세계적 왕국을 실현할 수 있고 인류의 평화를 이룰 수 있다. 인간의 양심을 지배하고 빵을 손아귀에 쥐고 있는 사람만이 인간을 지배한다. 그래서 우리는 케사르의 검을 잡았다.”


대심문관은 자신의 속내 또한 드러낸다. “너는 자유란 이름을 가지고 모든 인간을 축복해주었다. 하지만 나 또한 그 자유를 소중하게 여긴 적이 있었지. 나 역시 너의 그 선택받은 사람들 틈에 끼어보려 한 적이 있었단 말이야. 그러나 나는 그 허황된 꿈에서 깨어나 너의 사업에 수정을 가한 사람들 틈에 끼어든 거다.” 이렇게 자신의 정당성을 강조한 대심문관은 마지막 판결을 내린다. “기필코 너를 내일 사형에 처하겠다.”


그러한 심문에도 한 마디 대꾸하지 않은 그리스도는 오히려 대심문관의 입술에 입을 맞추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몸을 부르르 떤 대심문관은 문을 열어 제치고 ‘죄수’에게 외친다. “자 가라. 그리고 두 번 다시 나타나지 마라. 영원히!”


섬뜩한 진실이다. 이 이야기가 과거 한 때 인간과 교회를 두고 한 것이라면 그나마 다행이다. 오늘 사람들, 그리고 교회 현실과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사실이 더더욱 섬뜩하다. 교회가 물질적 축복을 지상의 가치로 알고, 신앙을 놀라운 기적을 일으키는 도깨비 방망이로 둔갑시키고, 권력에 편승하여 영향력을 펼치고자 할 때 교회는 이미 악마의 유혹에 넘어간 것이다. 오늘 때 아닌 종교편향이 우리 사회의 커다란 쟁점이 되고 있는 사연이 무엇인가? 그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권력집단이 되어 진리를 독점한 듯 행세하는 일부 기독교 세력의 자기성찰 부재와 그에 편승한 정치권력의 무감각 탓이다. 어쩌다 그리 되었을까? 예수 그리스도는 그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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