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게시판

안식년 휴가 1신: 시간이 남는 경험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1-07 10:56
조회
1056




2013010502.jpg

2013010602.jpg

2013010603.jpg

2013010604.jpg


2(수)일 도착하여 첫 주간을 보냈습니다. 처음에는 기온차가 많이 나 봄날같이 느껴지던 날씨가 이제는 겨울처럼 느껴집니다. 곧바로 현지화된 탓입니다. 아침 저녁으로 싸늘한 추위를 느낍니다.


어제는 은각사 뒷산 大文子山 한 봉우리를 등산했습니다. 철학의 길을 따라 남쪽 끄트머리에 이르러 보자니, 새삼 이 지역 기독교 선교의 주역 니지마와 하아디의 묘소 표시가 있길래 따라 올라간 길이었습니다. 그저 산보를 연장하는 기분으로 길을 따라 올라갔는데, 등산길이 되었습니다.


멀리서 보는 일본 산들은 우리 산들과 크게 달라 보이지 않지만 산에 들어가면 전혀 딴판입니다. 울창한 숲으로 한낮에도 어두컴컴합니다. 게다가 습한 기운이 확 느껴지기까지 합니다. 이름 모를 새들의 소리를 들으면 곳곳에 알 수 없는 귀신들이 있을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래서 일본에는 귀신이 많은가보다 싶기도 하고...^^


가뿐 숨을 내쉬며 봉우리에 오르니 기독교 묘원이 보입니다. 찬송 소리가 들려 눈길을 돌려보니 두 부부가 한 묘소 앞에서 숙연하게 성묘를 하며 부르는 찬송입니다. 길을 계속 따라 가자니 멧돼지의 발자국들이 선명하고... 작은 그 봉우리 정상에 올라가도 나무 숲으로  시야가 트이질 않습니다. 오늘은 이만 하고 내려오는 중 다른 등산객들이 하나둘 올라옵니다. 인사를 나누고, 한 등산객이 아직 남았느냐 묻길래 남았다고 답했는데, 알려줘서 고맙다는 것인지 외국인인지 알아차려서 미안하다는 것인지 ‘스미마셍’하고 올라갑니다. 다시 철학의 길을 통해 돌아오는 길, 두어 시간 남짓 등산길이었습니다.


여장을 풀고, 먹을거리를 구하고, 자취생활 시작한 지난 주간, 어제까지는 아무 계획도 없이 그야말로 방심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인터넷이 되는 장소, 되는 방법을 찾는 것, 일기를 쓰는 것, 그리고 또 하나 뚜렷한 일이 있다면 교회 13년 사진을 정리한 것 등이 소일거리라면 소일거리였습니다. 계획 없이 보내자니 시간이 남는 경험을 처음 했습니다. 세상에! 시간이 남는구나! 이게 바로 안식이구나 하는 느낌...^^  시간이 남는다고 느끼는 경험, 저로서는 참 낯선 경험입니다.


적막한 골방에는 인터넷도 안 되고, 텔레비전은 아날로그라 디지털방송이 잡히지 않아 무용지물... 방구석에 먼지를 뒤집어 쓴 오디오가 있어 먼지를 닦아내고 조작을 해보니 라디오는 작동을 해 음악을 듣고 일기예보도 듣게 되었습니다. 똑 같은 방에서 논문을 쓸 때는 신경조차 쓰지 않았던 물건이었는데...ㅎㅎ


이번주간부터는 계획적인 소일거리를 진행하려고 합니다. 무료해지면 안 되니까요.


어제 저녁 때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숙소 근처 사설도서관을 찾았는데 ‘만 새끼’[滿席]로 못하고, 오늘 다시 찾아와 빈 자리를 잡아 비로소 인사드립니다.

* 최형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08 20:22)
첨부파일 : 2013010301.jpg
첨부파일 : 2013010501.jpg
전체 2
  • 2013-01-07 23:33
    시간이 남는 첫 경험을 하신다니 축하드립니다...매번 가시는 곳이지만 가실때마다 새로운 불편을 겪으시네요..ㅎㅎ 역시 타지는 타지인가 보네요... 근데, 산에서 등산객이 남았다고 묻는 것은 뭐가 남았다고 묻는 것인지요...?

  • 2013-01-08 14:12
    ㅎㅎ '정상이 얼마나 남았느냐?' 그 소리지요?

    어제부터는 책 개정 작업에 착수해, 반짝 경험했던 시간이 남는 일은 드물 것 같습니다.^^

    그러나 쫓기지 않고, 압박받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경험은 충분히 누릴 것 같습니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