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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년 휴가 2신: 계란찜 성공, 본격적인 등산과 산보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1-11 10:53
조회
1143


안식년 휴가 자취생활이 본격적인 궤도에 들어섰습니다. 그동안 집에서 가져온 기본반찬과 김, 그리고 된장찌개 하나로 식사를 해 왔는데, 뭔가 지루한 느낌이 들어 변화를 주기로 했습니다. 이전에 논문을 쓸 때는 그저 한 끼 식사 하면 그만이지 하는 마음이었는데, 이번에는 입맛의 변화를 요구하는군요. 생활의 발견이라고 할까요? 계란 후라이를 시도했으나, 도무지 형편없는 후라이판에다가 기름도 변변치 않아 계란 누룽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해서 재시도한 게 계란찜입니다. 작은 공기에 계란을 풀고, 새우젓이 없으니 약간의 소금과 조미료를 넣고, 이걸 다시 물이 끓는 냄비에 넣어 그럴 듯하게 성공했습니다. 위문단이 방문하면 특선메뉴로 내놓겠습니다. 그 사이 또 어떤 메뉴가 개발될지는 스스로도 기대되는 바가 큽니다. 크~하!

월요일부터 시작한 책 개정작업, 일단 책장을 한 쪽 한쪽 넘기며 개정 보완해야 할 내용들을 표시하는 작업을 완료하고, 그 기념으로 수요일 오후에는 산뜻하게 등산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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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의 길에서 본 다이몬지산, 나무가 없는 부분에 大자가 써 있습니다.


숙소 뒤편, 은각사가 자리한 다이몬지(大文字)산, 일본의 8월 보름 명절 ‘오봉’(お盆) 때 大자에 불을 밝히는 산입니다. 오후 2시가 넘어 산에 오르는데, 띄엄띄엄 등산객이 계속 오르내렸습니다. 서로 마주칠 때 어찌하나 했더니만, 우리 산행할 때와 똑같이 서로 인사를 나눕니다. 그래서 마주칠 때마다 ‘곤니찌와?’를 계속 외치며 산을 올랐습니다. 대 문자가 써 있는 대목에 이르니 교토시내가 한 눈에 다 들어옵니다. 산 아래 동쪽은 물론 건너편 서쪽 양편 남북 시내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오고 어디가 어디인지 다 구분할 정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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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자에서 내려다 본 천년고도 교토 시내, 시내 한 가운데 숲이 옛 천황궁 고쇼(御所),

고쇼와 이쪽 산 중간 숲이 교토대학 뒷산 요시다(吉田)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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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머무는 동네 전경, 가운데 오른편 큰 건물군이 교토대학 농학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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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정상을 향해 가는데 서양인 청년과 일본인 처자 커플이 오르다가 서양인 청년이 일본말로 또박또박 묻습니다. 자기는 이 산에 오르는 게 처음인데 전에 와 본 적이 있느냐고 합니다. 아마도 정상이 얼마나 남았는지 물을 작정이었던 것 같습니다. 나도 처음이고 한국에서 왔다 하니 고맙다 인사하며 하산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정상 가까이 이르렀을 즈음 자동 셔터로 기념촬영을 하려는 순간 한 등산객이 올라 왔습니다. 용기를 내어 사진을 부탁하고 기념촬영을 하였습니다. 사진 잘 나왔느냐고 확인까지 하고 앞서가는 그분에게 고맙다 인사하고 뒤따라 정상에 올랐더니 이번에는 자청하여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합니다. 덕분에 정상에서 몇 장 사진을 찍고 쉬는데, 그 분은 저쪽으로 가면 난젠지쪽으로 시간이 많이 걸리고 은각사 쪽으로 가려면 오던 길로 가라고 친절히 안내하며 조심해 내려가라고 일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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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창한 숲의 상쾌한 공기를 잔뜩 들이마시며 은각사 거쳐 철학의 길 입구에 다시 도달하니 딱 두 시간, 해발 466미터 높이로 가볍게 등산하기에 딱 적절한 산이었습니다. 여기 머무는 동안 아마도 몇 차례 더 오르게 될 예감입니다.


산에서 내려와 다이꼬구야(大國屋) 큰 가게에서 반찬거리를 샀습니다. 계란, 파, 두부, 꽈리고추에 잔 멸치까지 사서 새로운 메뉴를 시도했습니다. 이번에는 파를 썰어 넣은 계란찜과 함께 제가 평소 즐기는 꽈리고추 무릇까지 성공했습니다. 덕분에 저녁은 진수성찬이었습니다. 완전히 정착 국면입니다.^^


목요일 오후에는 시내 가모가와(鴨川) 쪽으로 산보를 나갔습니다. 윤동주와 함께 또 한 명의 도시샤(同志社) 시인 정지용의 시에 나오는 그 ‘압천’... 먼저 세계문화유산(교토에는 맨 세계문화유산이지만...) 가운데 하나인 시모가모 신사에 들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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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내력이나 신주가 누구인지, 무엇에 신통한지 등 무관심할 수는 없지만, 그보다는 그냥 풍경과 정취를 아무 생각없이 즐기는 것이 더 낫습니다. 수학여행 온 것도 아니니...ㅎㅎ. 하지만, 언뜻 드는 생각, 압축 재현된 자연적 공간 속에 고즈넉하게 자리한 그 신사에 드낙거리며 신심을 확인하는 사람들에게 세상의 변화는 부질없는 것으로 느껴질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일본 보수주의의 정신적 기원의 일면이라고 할까요?


신사에서 나와 강가 길을 따라 그냥 걸었습니다. 걷다 보니 저 북쪽 산에도 뭔가 글자가 써 있는데, 무슨 글자인지는 잘 모르겠군요. 강에는 새들도 한가로이 노닐고, 사람들의 발걸음도 한가롭습니다. 이 맑고 깨끗한 강물이 교토시내 한복판을 흘러내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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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때가 되어 약간 을씨년스러운 느낌이 들 즈음, 다시 걸어 돌아오니 이번 산보도 두 시간 거리였습니다. 매일 산보와 등산, 두 시간 정도는 계속 걷습니다. 지금 작업중인 과제 생각도 떠오르지만, 그 밖에도 그냥 떠오르는 대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그냥 걷는 시간이 좋습니다. 돌아오는 길가 가게들 진열장의 음식들, 그리고 풍겨 나오는 냄새가 빈 배를 유혹합니다. 시내쪽으로 산보를 하니 이게 문제로군요.^^ 이것도 새삼스러운 경험입니다. 하긴 제가 전에 여기 머물 때는 늘 여름이라 그렇게 많은 시간을 여유롭게 걸을 일이 없었고, 길거리를 걷는다 해도 목적지를 향해 걷을 뿐이었는데, 더위에 땀 흘릴 일도 없이 그냥 그렇게 걷자니 전에 보이지 않던 것도 보이고 느낄 수 없었던 느낌들도 새삼 듭니다.


책 개정 작업은 본격적으로 들어가, 앞선 며칠 동안 책에 표시한 대로 원고를 수정 보완하고 있는 중입니다. 어제는 박근혜 정권의 등장 과정에서 보수 기독교의 역할을 평가하는 내용을 구상하고 정리하느라 시간을 많이 쏟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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맨 마지막 장면은 제가 인터넷에 접속하기 위해 들르는 사설도서관입니다.

두 시간에 250엔, 차 한잔 곁들여...

* 최형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02-08 20:23)
첨부파일 : 2013011001.jpg
전체 3
  • 2013-01-13 08:59
    사진으로 보니 천년고토 교토가 고즈넉하게 보입니다. 느낌이 아주 평온한 분위기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자주 찾으시는 이유이신가요...ㅎㅎ

    계란찜 성공을 축하드립니다! 이젠 완전히 자취생활을 익히시는군요. 계속 다양한 메뉴개발을 어떻게 하실지 사뭇 궁금합니다...ㅎㅎ

  • 2013-01-14 10:09
    점점 적응해 가시는 모습니 참 좋습니다.

    근데 어쩌죠? 교회가 목사님 계신 것처럼 너무너무 잘 돌아가요ㅋㅋ

    목사님의 그 호탕한 웃음 소릴 들을 수 없다는 것만 빼놓고요.

  • 2013-01-14 20:46
    한편으로는 마음이 놓이고, 그러나 한편으로는 걱정이 되는 모순지경이군요.^^

    그래도 제 존재감을 거꾸로 확인시켜주는 부재 요소가 있다니 천만다행입니다. 휴~!

    푸하하하하! 이건 문자로는 물론 녹음으로도 안 되는 겁니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