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1-29 14:06
조회
3408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10번째 원고입니다(071129).


경제가 아니라 사람을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보면 각 지역의 경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입간판들이 있다. 그 가운데 요즘 유난히 눈에 띄는 내용이 있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 언제부터인지 지역마다 스스로를 내세우는 표어로 흔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걸 볼 때마다 반문할 수밖에 없다. “사람이 살기 좋은 고장” 또는 “시민이 행복한 도시”, 이런 표어는 볼 수 없는 것일까? 어떤 지역에서 그와 유사한 표어를 내걸고 있는지 모르지만, 아직 그런 표어를 본 적이 없다.


“기업하기 좋은 도시”라는 말이 표방하는 뜻이 무엇인지 모르는 바 아니다. 기업의 투자가 원활하게 이뤄지도록 최선의 배려를 아끼지 않겠다는 뜻일 터이다. 기업의 투자가 활발하게 이뤄지면 지역경제가 활성화되고, 지역경제가 활성화되면 지역민이 살기 좋아진다는 논리를 그 밑바탕에 깔고 있다. 사람들은 대개 그 논리를 의문의 여지없이 진실로 받아들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니 그 누구도 그에 대해 심각한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공감한다.


그러나 과연 진실일까? 얼마 전 한 일간지에 보도된 외환위기 10년 후 한국경제의 주요 지표들을 보면 그 논리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다.


국가위기라고 했던 외환위기 후 10년이 지난 지금 한국경제는 놀랍게 달라졌다. 우선 기업들의 재무구조가 개선되었다. 외환위기 직후 1000대 기업의 부채율은 347%였지만 지난해는 83%로 뚝 떨어졌다. 전체 국민소득도 늘었고, 법인의 소득 역시 10년 동안 네 배 가까이 늘었다. 반면에 가계소득은 그에 상응하는 만큼 늘지 않았다. 지난 10년간 법인의 가처분 소득은 609%가 증가했는데 반해 가계의 가처분 소득은 53% 증가하는 데 그쳤다. 딱 잘라 말해 국가경제 전반은 성장하고 기업은 안정되었지만, 평범한 서민들의 삶은 상대적으로 더더욱 어려워졌다.


이 사실은 경제성장이 곧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삶을 개선시키는 것으로 귀결되지 않는다는 것을 말한다. 국가경제와 기업의 안정이 곧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살림살이의 안정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벌어들인 돈이 저절로 가계로 넘어가지는 않는다. 단순히 양적 규모만의 성장을 추구하는 경제성장 논리의 허구가 여기에 있다.


따라서 이 사실은 우리 사회가 함께 추구해야 할 공동의 가치가 무엇이어야 하는지 역설적으로 말해준다. 우리는 경제성장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나 사람답게 삶을 누릴 수 있는 다른 가치관을 추구해야 한다. 사람들끼리 서로 돕고 협력하는 연대적 가치가 더욱 소중한 것이다.


대통령 선거가 다가오고 있다. 후보들이 외치는 경제성장 공약에 국민들이 또 기만당하게 될 것을 생각하면 마음이 갑갑해져 온다. 정말 궁핍한 시대에는 경제성장이 절실한 과제였다. 하지만 이제 이만하면 다른 가치를 모색해야 할 때가 아닌가! 사람들 사이에 따듯한 마음을 나눌 수 있고, 사람들 사이에 서로 돕는 협력의 기풍을 일으킬 수 있는 새로운 가치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가치를 내세우며 대통령에 당선될 수 있고, 그런 가치를 지역마다 표방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 있는 현실이 된다면 더 없이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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