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최고경영자형 지도력?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12-09 23:41
조회
3782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62번째 원고입니다(071208).


최고경영자형 지도력?


듣자하니 잘 나간다는 어떤 목사는 경영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목회를 하지 말라고 공공연하게 이야기를 한다고 한다. 대략 난감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나 같은 사람은 아예 목회자로서 자격이 없다는 이야기 아닌가!


그 이야기를 듣기보다 훨씬 전, 아마도 내가 안수를 받을 즈음이었을 것이다. 선배 목사 한 분이 던진 진지한 조언이 기억에 남아 있다. 목회자로서 설교, 심방, 행정 가운데 적어도 한 가지는 분명한 주특기로 해야 한다고 했다. 물론 그 모든 것을 다 아우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지만, 다 갖출 수 없다면 적어도 한 가지 특기는 갖추어야 실패하지 않는 목회자로서 최소한의 요건을 갖춘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교회가 ‘하나님의 백성의 공동체’라 하지만, 현실에 발을 딛고 있는 인간들의 조직인 만큼 세속적 인간관계에서 필요한 어떤 요건을 원용하는 불가피한 일이다. 그 점에서 그 선배 목사의 조언은 무척 일리 있는 말씀으로 기억하고 있다. 설교자, 심방자로서 목회자상은 새삼스레 이야기할 것 없지만, 행정가로서 목회자상 역시 가능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런데 그 모든 목회자상은 복음의 진수를 온전히 전한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것이다. 그 전제하에서 다양한 자질을 갖춘 목회자상을 그려볼 수 있고, 그 다양한 목회자상은 교회를 훨씬 풍요롭게 할 것이다.


그러나 경영 마인드가 없는 사람은 아예 목회를 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는 전혀 다르다. 아마도 대형화된 교회에서는 경영자적 자질이 목회자에게 요구될 것이다. 그런 교회는 하나의 형태일 뿐이며, 그런 교회에 요구되는 목회자의 자질 또한 그에 부합하는 하나의 요건일 뿐이다. 그런데도 경영자적 자질을 목회자의 필수적 자질이라고 못 박아 말하는 것은 결국 대형화된 교회만이 진짜 교회라는 가정 위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그런 가정이 과연 가당키나 한가? 양적 규모의 성장만을 추구하는 교회 성장주의의 폐해는 새삼 말할 것 없다.  


바야흐로 세상은 온통 기업이 지배하는 현실이 되고 말았다. 삼성 비자금 문제는 사실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 지배의 현실이 만천하에 노출된 현상일 뿐이다. 대통령도 최고경영자형으로 내세워야 한다고 야단들이다. 도덕성보다도 추진력이 대통령 후보로서 갖춰야 할 최고 덕목으로 간주되고 있다. 교회마저 최고경영자형 지도력을 요구하는 판이니 세상을 탓할 일만도 아닌 듯하다.


여기서 잠깐 되묻고 싶다. 최고경영자형 지도력의 실체가 무엇일까? 경영의 원리란 최소한의 투자로 최대한의 효과를 거두는 것이다. 최고경영자에게 흔히 기대되는 합리성의 실체란 그런 것이다. 그런 기대에서 볼 때 아흔아홉 마리 양을 두고 한 마리 양을 찾아나서는 일은 얼마나 비효율적이고 부질없는 짓인가? 교회마저도, 목회자마저도 그 원칙을 저버린다면, 최고가 될 수 없는 대다수 사람들은 어디에서 희망을 발견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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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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