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주화 20년, 뒷걸음치는 민주주의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6-20 10:45
조회
3529
* <천안신문> 종교인칼럼 8번째 원고입니다(070620).



민주화 20년, 뒷걸음치는 민주주의


최형묵(천안살림교회 목사)



1987년 6월 민주항쟁 20주년을 넘기고 있다. <민주헌법쟁취국민운동본부>는 1987년 6월 10일을 전 국민 저항의 날로 삼았다. 그 날은 신군부 중심의 민정당이 노태우를 대통령후보로 선출함으로써 전두환으로부터 이어지는 권력을 공식 승계하는 날이었다. 그 사실을 인정할 수 없었던 국민들은 바로 그 날 서울 시청의 시계가 12시를 가리키는 순간 바로 그 곁 성공회 대성당의 종소리와 함께 독재정권에 대한 저항의 행진을 시작했다.


물론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은 단 하루의 국민적 궐기로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연초에 서울대생 박종철군의 고문치사 사건에 대한 국민적 분노와 저항이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군부독재의 지속을 획책하는 4.13 호헌선언으로 국민적 분노와 저항이 더욱 거세어지는 가운데 6월 항쟁이 큰 분수령을 이루게 되었다. 이어 연세대생 이한열군의 최루탄 피격 사망으로 독재정권에 대한 국민적 저항은 6월이 지나고 7월에 이르기까지도 지속되었다. 결국 국민적 저항에 부딪힌 정권은 직선제 개헌을 할 수밖에 없었고, 이후 한국의 민주화는 제도화에 진입하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화는 세계사적으로도 놀라운 일이었다. 세계는 경제적 성장과 함께 민주화를 이뤄낸 보기 드문 사례로 한국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우리 사회의 민주화는 모든 영역에서 놀라울 정도로 진전되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민주항쟁 이후 2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한국의 민주화를 어떻게 평가할 수 있을까? 유감스럽게도 지금 한국의 민주화는 뒷걸음을 치고 있다. 정치제도적 절차상으로 민주화는 확실히 진전되었지만, 모든 국민의 기회 균등과 동등한 시민적 주체로서 서게 만드는 실질적 조건의 기반은 급속히 와해되고 있다. 실업률과 경제적 양극화가 계속 증대되고 있고, 그와 같은 경제적 형편의 악화로 대다수 사람들은 민주화의 열매를 체감하고 있지 못하다. 민주화의 최대 수혜자는 재벌과 언론일 뿐 일반 국민은 아니라는 평가는 오늘 한국 민주화의 현실을 잘 말해 준다. 절차적 민주화는 이뤄졌지만 실질적 민주화는 위협을 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어째서 그와 같은 사태가 벌어지고 있을까? 그것은 일차적으로 보수 세력과의 타협을 통한 민주화의 한계에서 비롯된다. 6월 항쟁에 이어 7~8월 노동자들의 투쟁이 이어졌지만, 그것이 노동자들만의 투쟁으로 끝나고 말았던 현실은 처음부터 이후 한국 민주화의 한계를 시사한다. 또한 민주화 세력이 곧바로 정권교체를 하는 데 실패했고 기존 지배세력의 타협만을 얻어낼 수 있었을 뿐이었다. 김대중 정권 이후 민주화 세력이 정권교체에 성공하기는 했지만, 보수세력은 여전히 기득권을 놓지 않았고 역시 타협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자본의 완전한 지배를 의미하는 신자유주의의 물결 앞에 사실상 속수무책으로 정권은 이를 받아들이고 말았다. 경제적 성장주의는 재고의 여지없이 계승되었고, 그 점에서 개발독재체제하의 정권과 민주화 이후 정권은 차이가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 사회 경제적 양극화는 필연적이었다.


그런 사태를 반전시킬 것으로 기대되었던 노무현 정부는 오히려 그 지지자들의 이해와 정반대되는 정책을 펼쳤고, 급기야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결국 경쟁과 효율이 최고의 가치가 되는 사회, 강자만 살아남고 약자는 퇴출될 수밖에 없는 사회가 되어 실질적 민주주의의 기반은 심각하게 위협을 당하게 되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뒷걸음을 치게 된 데에는 정권의 잘못만 있는 것은 아니다. 정치권력의 교체에만 신경을 썼지 민중의 삶에는 깊은 관심을 기울이지 못한 민주화 세력의 잘못 또한 크다. 권력은 그 속성 자체로 무소불위의 힘을 지향한다. 따라서 끊임없이 권력을 해체하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으면 그것은 필연적으로 민중을 지배하게 되어 있다. 진정한 민주화란 그 권력을 약화시키고 민중을 진정한 주체로 내세우는 것이다. 그러나 민주화 세력은 그 점을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못했다.


오늘 뒷걸음치는 한국의 민주주의는, 민주화의 진정한 뜻과 그 조건을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 정권의 교체와 정치절차상의 민주화로 충분하지 않다. 그것을 실질적으로 구현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들어야 하고, 더 나아가서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삶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생활방식을 갖추어야 한다. 우리는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조건을 만들도록 요구할 수 있다면, 우리 스스로는 진정으로 민주적인 삶의 관계에 대한 인식과 생활양식을 추구해야 한다. 일상의 영역에서 삶으로서 민주주의를 지켜나가지 않는다면 민주주의는 끊임없이 위협당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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