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좌담: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는 유의미한 소수에게 미래가 있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7-07 16:11
조회
4394
*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 미국복음주의를 모방한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 그 역사와 정치적 욕망> 평사리, 2007(316쪽/13000원) 말미에 실린 좌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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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의 저자 최형묵·김진호 목사와 백찬홍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운영위원이 만나 '자발적 가난 실천하는 소수에게 미래 있다'는 주제로 좌담회를 열었다. (사진제공 평사리)  

  

김진호/ 한국교회는 평양대부흥운동10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 지난해부터 제각각으로 준비해왔고, 오는 7월 8일에 상암월드컵경기장에서 성대한 연합행사로 치를 예정이다. 100주년이라는 안성맞춤의 명분이 있기도 하지만 이 평양대부흥운동은 기독교의 보수적이고 성공 지향적이며 친미적인 특성을 정초한 ‘초석적 사건’이다. 그래서 이 사건을 되살리려는 기억의 정치는 예사스럽게 보이지 않는다. ‘어게인 1907’이라는 슬로건이 시사하듯이, 교회는 이 사건의 근본정신을 오늘에 재현하여 신앙인들의 보수적 통합을 도모하려 한다. 물론 이미 사학법 재개정 운동을 통해 교회는 사회적 이익집단으로 이미 결집되어 있다. 그러나 평양대부흥운동에 관한 기억의 정치는 기독교를 이해집단의 차원을 넘어서 신앙공동체로서, 나아가 사회로 외화시키는 선교 공동체로서 활성화하려는 데에 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 엘리트들이 행사를 기획한 핵심 의도다.


최형묵/ 평양대부흥운동을 비정치적 신앙운동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견해다. 선교사들은 평양대부흥운동 당시 비정치화를 표방했으나 오히려 고도의 정치적 효과를 노렸다. 일제에 순응적인 신앙을 주입시키고 이런 신앙을 내면화하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이 대부흥운동을 계기로 선교사들이 헤게모니를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렇게 보면, 한국교회는 처음부터 정치적이었다. 그리고 그런 추세가 해방 이후 독재정권으로 이어진 것이다. 물론 민주화 이후에는 다른 방식으로 표현되고 있지만, 그 이전까지는 대체적으로 비정치화를 통한 ‘역설적 정치화’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러일전쟁과 평양대부흥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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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진호 목사는 "한국 기독교가 유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하지만 너무 강조할 건 아니다.  한국 기독교가 유교와 결합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질이 안 좋은 기독교로 시작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평사리)  

  

김진호/ 대부흥운동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사건으로 양적인 부흥이 이루어졌다고 본 것 같다. 그런데 실제로 1907년 평양에 관한 당시 통계들을 살펴보면, 이미 사건 이전에 교인수와 교회가 급증했음을 알 수 있다. 물론 평양대부흥운동의 결과, 양적인 팽창이 가속화된 것도 사실이고 운동이 전국화되어서 전국적인 양적 팽창을 유도한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그렇게만 보면 중요한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그동안의 어떤 연구도 주목하지 않은 점인데, 대부흥운동 이전의 기독교 팽창은 ‘러일전쟁’의 직접적인 결과라는 사실이다. 당시 일본군의 진군루트이자 병참기지였던 이 지역에는 군대 폭력이 상당했다. 바로 이런 군대 폭력이 많은 사람들을 교회로 이끌었다고 봐야 한다. 교회는 미국인 선교사들 덕에 일본 군대의 직접적인 폭력을 피해 갈 수 있는 상대적으로 안전한 공간이었다. 게다가 선교사들은 신자들에게 쌀을 제공함으로써 전쟁기간은 물론, 전후에도 교회는 삶의 안전이 보장될 수 있는 최적의 공간이었다.


문제는 당시 교회가 급작스런 신자들의 팽창을 소화할 만한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는 데 있다. 다양성에 대해 닫혀 있었다. 그리고 전쟁의 상처가 가져온 정신적 공황을 치유하기에는, 신자들의 삶에 대한 몰이해가 심각했다. 교회 지도자들은 이를 ‘혼란’으로만 기억했다. 이것이 선교사들로 하여금 열렬한 기도회를 갖게 한 직접적인 계기였다.


이미 원산에서 일었던 영적 흥분 상황이 평양에서도 재연되기를 갈구하며 기도회는 시작되었다. 처음부터 열광적인 분위기였다. 바람은 실현되었다. 종교적 흥분 상황은 주변 사람들을 하나둘씩 기도회에 동참하게 했고, 얼마 가지 않아서 교회 전체를 엑스타시적 상황으로 몰입하게 하는 데 성공했다. 아마도 전쟁의 상처로 완악해진 사람들에게 이러한 종교적 흥분 상황은 어떤 카타르시스를 제공해주었던 것 같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회로 들어온 이들은 하나로 통합되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이 과정에서 선교사의 헤게모니가 결정적으로 확고해졌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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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찬홍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운영위원은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고는 종교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선교사들은 교인들의 눈을 돌릴 만한 곳을 찾았다. 바로 그 것이 평양대부흥운동이다"고 말한다. (사진제공 평사리)  

  

백찬홍/ 평양대부흥운동이 있던 1907년은 헤이그 밀사사건으로 고종이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으로 국권이 거의 일본으로 넘어갔으며, 이에 항거하는 의병운동과 애국운동이 전국 각지에서 들불처럼 일어난 해였다. 그야말로 대혼란의 상황이었다. 일제는 애국인사들의 활동 거점이었던 교회가 눈에 거슬렸다. 일본의 협조를 받지 않고는 종교 활동이 어렵다는 것을 깨달은 선교사들은 교인들의 눈을 돌릴 만한 곳을 찾았다. 바로 그 것이 평양대부흥운동이다. 양쪽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떨어진 초대형 이벤트였던 것이다. 이것은 마치 60∼70년대 민주화운동이 한참일 때, 기독교 보수주의자들이 빌리 그래함 전도대회나 민족대성회 같은 대형집회를 통해 교인들의 눈과 귀를 막은 것과 다를 바 없다. 이렇게 해서 평양대부흥운동 이후 한국교회는 본격적으로 보수화의 길을 걷게 되었다.


김진호/ 대부흥운동 이후 선교사들은 엘리트 양성시스템인 신학교를 장악해간다. 학생선발이나 교과 과정, 교수 채용, 목사 안수 등 일체의 교육 과정을 장악하면서 한국교회의 신학과 신앙형태를 규정해나갔다. 그런데 1930년대 후반 재미있는 일이 벌어진다. 일제와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맺어왔던 선교사들이 신사참배 건으로 충돌을 빚었고 끝내 일제에 의해 추방을 당한다. 지속되던 뒷거래는 끝이 났고, 종교 권력에 공백이 생기게 된 것이다. 이때 김재준 목사를 중심으로 조선신학교가 설립된다. 학교설립에 즈음 김 목사가 기초한 5개 강령은 선교사들이 장악했던 권력을 자주화시키려는 노력이었다. 아이러니컬하지만 서양 학문을 통해서 서양 선교사들의 권력을 해체시키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김재준 목사의 시도는 충분히 성공하진 못했다. 해방이 되고나서, 보수적인 학생들이 김재준의 자유주의 신학을 고발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이 학생들은 대부분 서북 지역 출신이 아니었다. 즉, 교회는 이미 오래전에 범서북화가 이루어져 있었던 것이다. 교파 분열이 그렇게 심한 데도 신앙과 신학은 서북 지역의 것으로 표준화되었다는 점이 한국 기독교의 특징인데, 이것은 평양대부흥운동의 효과로 볼 수 있다.


양대인 의식과 선교사


백찬홍/ 부흥운동 당시 장로회 평양신학교 교장이었던 선교사 사무엘 마펫은 평양 숭의여고 책임자를 겸했고, 후에 조선장로회 총회장까지 되는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감리교도 1930년 남북감리교회가 통합해 조선감리회로 출범하기 전까지 미국 감리교의 관리를 받았다. 이들 선교사는 대부분 근본주의자였다. 교회는 전통적인 유교적 가부장 질서에 선교사의 근본주의를 수용하면서 보수 기독교의 기반을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기독교가 근대교육을 도입하고 남녀차별을 없애려했다지만, 여전히 교회는 목회자와 남성 중심으로 운영되고 있다. 아직도 교회 인구의 70퍼센트가 넘는 여성은 부엌데기 정도로 취급받고 있다. 기독교 근본주의도 살펴보면, 부권을 강조하고 여성을 배제시키는 논리를 가지고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유교적 가부장제와 잘 어울린다. 몇 년 전 예장 합동 총회장을 지낸 임태득 목사가 기저귀를 찬 여성은 강단에 설 수 없다고 해서 큰 물의를 일으켰는데, 그 만큼 한국교회의 가부장적 질서는 공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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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최형묵 목사는 "사도행전 등이 전하는 바와 같이 성령은 기존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나타나는 데 한국교회는 기존 체제를 유지, 보존하는 데 성령을 이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평사리)  

  

최형묵/ 교회의 체질을 유교적 가부장제와 연결 지어 볼 순 있겠지만 다른 방식도 있다. 예컨대 자생적인 근대화가 실패한 결과라고 볼 수도 있겠다. 평안도 사람들이 교회를 찾았던 것은 ‘양대인(洋大人) 의식’에서였다. 양대인은 구한말 서구열강을 등에 업고 권력을 행사했던 선교사들의 별칭이었다. 봉건 사회가 해체되고 공공의 질서가 무력해져가던 구한말에, 각종 수탈에 알몸 그대로 노출되어 있던 민초들이 교회에서만은 선교사의 보호를 받을 수 있었고, 여기에서 양대인들이 탐관오리보다는 낫다는 의식이 생겨났다. 어떻게 보면 양대인 의식은 사대주의의 변형이었고, 여기에서 한국 기독교의 특징인 ‘힘에 의존하는 신앙’이 싹텄다고 할 수 있다. 자생적인 근대화가 이루어지고 이를 통해 규율되는 사회가 형성되었다면 달랐을 것이다.


요컨대, 봉건질서가 요동치면서 의탁할 곳 없는 사람들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급속하게 벌어지고, 특히 교회가 가시적이고 구체적인 의존 대상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또 이런 기독교를 전하고, 일본을 개항시켰던 미국은 강대한 나라라는 인식이 퍼지게 되었다. 해방 후 일제를 패망시킨 미국이 한반도에 들어오자, 교회의 미국 의존도는 더욱 심화되고 체질화되었다. 군사정권이 대미교섭 창구로 김장환 같은 친미보수교회 지도자를 활용할 만큼, 교회의 미국 의존도는 매우 강력하였다


김진호/ 유교의 영향이 있었다고 하지만 너무 강조할 건 아니다. 기독교가 진짜 문제다. 한국 기독교가 유교와 결합한 것이 아니고 원래부터 질이 안 좋은 기독교로 시작했다. 힘에 대한 지향성이다. 힘을 위해 교섭하고 타협하고, 힘없는 자를 배려하지 않는 방식으로 자기를 주체화시키면서 발전했다. 힘이 필요하고 자기들에게 유리한 것을 취하기 위해 유교·불교·샤머니즘을 이용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못된 요소들은 취하면서도 좋은 것은 다 갖다 버렸다. 예로 들어 평양대부흥운동은 영적 각성을 도덕적 재무장으로 통합시켰다. 이것은 한국 전통에 있는 유연하고 융통성 있는 도덕관을 악용한 것이다.


그런데 신사참배와 부딪치면서 파열음이 생겼다. 사실 우상숭배를 극단적으로 거부하는 근본주의와 신사참배는 불행한 만남이었다. 일본 식민주의가 잘못된 정책을 펼치자 이에 저항을 했다. 문제는 저항한 인사들이 극소수였다는 점이다. 70여 명이 수감되었다가 20여 명 살아서 출옥했을 뿐이다. 신사참배 때 대다수 기독교인들은 근본주의 신앙을 수용했음에도 불구하고 신사참배를 그대로 승복했다. 이것은 큰 상처였다. 강한 신앙과 강한 정책이 부딪치고 한쪽이 일방적으로 관철되었으니, 이러한 신앙의 위기는 많은 기독교도들에게 트라우마(신체적인 손상 및 생명을 위협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후 나타나는 정신적인 장애가 1개월 이상 지속되는 질병-편집자 주)로 남게 되었다. 그 상흔은 공산주의라는 새로운 악마를 발견하면서 극렬한 반응을 보였고 공격성으로 표출되었다. 신사참배에 승복한 얼치기 악마인 자기들과 다른, 진짜 악마를 찾아낸 것이다. 트라우마로 인한 병증이 그토록 빠르게 해소되고, 기독교가 잘 통합된 집단처럼 동일한 신념, 동일한 윤리관, 동일한 세계관을 가진 동질적 집단이 된 것은 바로 이러한 증오의 정치와 깊은 관련이 있다. 해서 반공주의는 한국 기독교의 전매상표가 되었다.


백찬홍/ 교회는 대부흥운동을 기념하면서 길선주·주기철 같은 인물들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들은 평양대부흥운동과 관련이 있고 신사참배를 거부했던 이른바 순교했던 인물들이다. 사실 한국교회가 신사참배에 대해 역사적 참회는 제대로 하지 않으면서 대부흥운동과 이들을 집중적으로 연계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성서적으로 회개는 과거의 잘못을 반성하고 기득권을 포기하고 새롭게 출발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기득권은 움켜진 채 정통성을 조작하고 역사를 왜곡하고 있다.


김진호/ 평양대부흥운동은 한마디로 성령운동을 통해 한국교회를 통합시켜보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성령을 도구화하여 시장 메커니즘으로 소비하겠다는 것밖에 안 된다. 그렇게 본다면 성령은 너무 값싼 존재로 전락한다.


최형묵/ 기독교 역사에서 성령은 아주 다르게 나타났다. 사도행전 등이 전하는 바와 같이 성령은 기존의 질서에 균열을 내는 것으로 나타나는 데 한국교회는 기존 체제를 유지, 보존하는 데 성령을 이용하고 있다.


친미 성향, 친이스라엘 성향


백찬홍/ 미국 기독교는 승리주의와 성공담론이 특징이다. 유럽에서 밀려난 근본주의 경향의 청교도들이나 이단자, 추방당했던 사람들이 신의 이름으로 원주민인 인디언들을 학살하고 미대륙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힘과 성공을 찬양하는 그들만의 기독교를 만든 것이다. 이러한 전통을 이어받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와서 똑같은 것을 가르쳤고 해방과 전쟁이라는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교회지도자들 역시 같은 방식으로 교인들의 의식구조를 지배했다. 한국교회의 성공담론은 순복음교회 같은 선발 대형 교회뿐만 아니라 온누리교회 같은 후발 대형 교회에서도 형식만 바꾼 채 계속 이어지고 있다.


김진호/ 한국교회는 친미적일 뿐 아니라 친이스라엘적이다. 이스라엘과 아랍이 싸울 때 거의 모든 한국교회는 은연중에 이스라엘을 지지한다. 역사적으로 기독교와 유대교는 뿌리 깊은 갈등구조를 가지고 있는 데 한국교회는 유대교에 대해 그다지 혐오스런 인식을 갖고 있지 않다. 그 자체로는 문제가 되지 않겠지만, 이는 국제정치적인 편향성을 갖게 만든다. 특히 한국 기독교인들의 편향성은 아시아에 대한 멸시와 연관되어 있다. 조승희 씨의 총격사건이 터졌을 때 한국 기독교 지도자들의 상당수가 속죄 또는 사과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었다. 아시아에서 한국인이 저지른 잘못은 일언반구도 없으면서 말이다. 이것이 아시아와 미국을 달리 보는 한국 기독교의 편견을 잘 보여준다.


최형묵/ 그래서 미국과 같은 기독교 국가는 신앙 때문에 잘 살고 제3세계국가들은 기독교를 안 받아들여 못산다고 말한다. 발전과 저발전도 신앙의 차원에서 이해하고 경제 질서를 아주 자연스럽게 신앙적으로 정당화하고 있다.

  

백찬홍/ 한국 목회자들의 자녀 중에 많은 수가 교인들의 헌금으로 미국에 유학하거나 연고를 맺고 있다. 그러기에, 조승희 씨 사건이 터진 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그 소동을 벌인 것이다. 이와 반대로 몇 해 전 동남아일대를 휩쓴 쓰나미로 수십만 명이 죽었을 때,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가 희생자들이 이슬람교 믿어 천벌 받아 죽었다고 했다. 이런 사람은 정신감정이 필요하다.


김진호/ 지난 2003년에 시청집회에서 어떤 목사는 10만의 청중 앞에서 영어로 기도했다. 그가 누구를 향해 했겠는가? 백악관과 부시를 향해 한 것이 아닌가. 하느님도 영어로 기도하는 것을 잘 받아줄 거라고, 무의식적으로는, 생각하지 않았겠는가. 교회 어린이들에게 하나님을 그리라고 하면 흰 수염의 백인·남성·연장자 등 아주 습성화된 이미지들로 묘사하곤 한다. 무언중에 그렇게 생각하도록 교회가 가르친 결과가 아닌가. 영어로 기도한 이를 포함해 많은 목사들은 하느님도 아마 미국인처럼 생각하고 있다고 믿을지 모른다. 그런 무의식의 식민주의가 조승희 총격 사건의 원인을 살펴보기보다는 한국 사람이 미국에서 사람을 죽여서 정말 송구스럽다는 생각을 앞서 표출하게 한 것이 아니겠는가.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바로 우리나라의 보호소에서 불 타 죽은 일에 대해서는 어떠한 문제의식도 갖지 않으면서 말이다.


백찬홍/ 아까 한국교회가 친미적이며 친이스라엘적이라고 했는데, 미국 세대주의 천년왕국운동의 영향을 받아서 그런다고 본다. 세대주의자들은 성서대로 말세에 예수가 예루살렘에 왕국을 세우고 1000년 동안 다스린다고 주장한다. 그러니 이에 영향 받은 한국 기독교인에게 이스라엘은 거룩한 땅이 아닐 수 없고, 당연히 이스라엘을 공격하는 자는 적그리스도 세력이 아닐 수 없다. 어쩌면, 한국의 기독교인은 한국사보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더 많이 안다. 신학교에서 성서뿐 아니라 이스라엘 역사를 달달 외우다 보니, 목회자들 대부분은 제1의 조국은 미국이요, 제2의 조국은 이스라엘이라고 여기게 된다. 그리고 교인들에게 그렇게 가르친다. 팔레스타인은 문제가 있으니까 이스라엘에게 당하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김진호/ 미국을 지지하는 나라는 다 지지한다. 앞서도 얘기했지만 한국 기독교는 교파가 수없이 분열되어 있다. 하지만 신사참배와 한국전쟁이라는 엄청난 두 가지 고통을 겪었고, 이 고통과 상처를 동일한 방식으로 봉합하는 과정에서 한국 기독교는 주체가 형성되었다. 물론 이는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시작된 감각의 연장선상에 있다. 이렇게 형성되어 온 신앙적 주체성은 교파에 따라 충분히 해석이 다를 만한 문제도 동일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만들었다.


백찬홍/ 한국교회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시각을 교정해야 한다. 현재의 팔레스타인을 구약의 블레셋 족으로 동일시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 있다. 과거 블레셋족도 나름의 존재 근거가 있고 현재 팔레스타인 민족도 나름의 역사적 존재 근거가 있는데, 왜곡된 신학과 신앙의 영향으로 이들은 악의 화신처럼 그려지고 있다. 그런 점에서 진보기독교진영도 이스라엘의 민중사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민중사도 공부해야 한다.


최형묵/ 아브라함이 여종인 하갈에게서 낳은 이스마엘이 현재 아랍민족의 조상으로 구약에 나와 있다. 하지만, 철저히 이스라엘 관점에서 기록된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은 이 관점을 확대 재생산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는 이를 그대로 수용하여, 아랍민족이 이스라엘의 적이니까 자신들에게도 적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서구에서도 유대인 대학살과 반시오니즘을 반성하고 그에 대한 보상 심리로 현대 이스라엘 국민국가의 탄생을 정당화해주고 있고, 성서신학도 그렇게 정리된 면이 없지 않다.


진보기독교의 정치이념적 분화

 

김진호/ 요즘 관심이 높은 기독교권의 정치세력화 또는 정치참여를 이야기해보자. 이를 토대로 교회 정치참여의 과정과 문제점을 평가하고 민주화와 어떤 연관을 가지는지 살필 필요가 있다.


백찬홍/ 보수진영의 정치참여뿐만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권 출범 이후 진보개혁 인사들의 정치참여도 평가해야 한다. 과거에는 보수 교회가 민족대성회나 조찬기도회 같은 간접방식으로 정치에 참여를 했다면, 개혁진영 일부 성직자들은 국회진출이나 입각, 평통자문위, 과거사청산위원회 같은 조직에 직접 참여하는 방식을 선택했다. 물론 소신껏 일하는 분들도 있지만, 말 그대로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는 식으로 활동한 분들도 있다. 정치참여 그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왜, 어떻게 정치에 참여하느냐가 문제인 것이다.


최형묵/ 진보개혁진영이 정치에 직접 참여하자, 권력을 두고 진보·보수 양 진영 간에 일종의 경합 또는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독재 권력을 지지한 대가로 보수 교회가 권력과 뒷거래를 했다. 하지만, 민주화 이후 그 거래 루트가 차단되자, 그동안 진보 교회의 반정부 투쟁을 비난해 왔던 보수 교회가 오히려 거리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상황이다. 그렇지 않아도 민주화로 마음이 불편한데, 진보진영이 정권을 잡고 그 일부 인사가 정치권에까지 진입하니까 아무래도 박탈감이 더 심했을 것이다. 자신들은 뒷거래밖에 하지 않았는데 진보는 앞거래까지 하니, 배가 아프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백찬홍/ 과거에 진보개혁진영이 비정치화를 가장한 보수 교회의 정치참여를 비판했던 것처럼, 진보개혁진영의 정치참여 방식이나 행동에 잘못이 있다면 비판할 필요가 있다. 수구세력의 잘못을 가혹하게 비판하면서 진보개혁진영의 잘못을 눈감으면, 과연 진보의 역할은 무엇인지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중요한 것은 수구는 무조건 잘못했고 진보는 무조건 옳다는 도그마를 깨야 한다. 정권에 참여한 교계의 진보 인사들이 잘한 면도 있지만, 노무현 정권의 이라크 파병, 친재벌 반노동 정책, 한미FTA 추진, 새만금댐 강행 등 진보개혁적 가치와 반하는 사안들에 대해 제대로 된 발언을 했던 인사가 거의 없다.


최형묵/ 정치권력의 폭압에 시달리던 시기에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던, 진보 교회는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았고 보수 교회의 행동을 비판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진보개혁인사들 안에서 권력지향성을 분명히 내비치며 신자유주의적 성장주의를 비판 없이 수용하는 발언들이 흘러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한미FTA 문제를 봐도 현 정치권력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된 인사들 중 일부는 FTA협상 결과의 심각성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이들은 절차적 민주화에 대해서는 투옥을 불사하는 신념을 가지고 있었지만, 경제 자유화의 폐해에 대해서는 피상적 이해에 머물러서 현 정부의 성장주의 정책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기독교 진보진영 내의 이념적 분화를 예상케 하는데, 진보 기독교권 출신으로 정치에 참여한 인사들 중에 일부는 신자유주의 대열에 합류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백찬홍/ 노 정권에 참여하지 않은 인사들에도 그와 같은 입장을 가진 분들이 많다. 이들은 현재 진보운동권 상층부에 해당하는 60대 중반 이후의 인사들이다. 이들은 60~70년대 미국과 유럽 교회의 지원으로 민주화운동을 했던 분들인데, 이들 자녀가 미국에서 공부했던 경우가 많다. 이중 미국 교회와 밀접한 인사들은 친미적인 모습을 종종 보이는데, 노무현 정권에 큰 불만을 가지면서도 한미FTA를 적극 찬성하는 입장이다.

  

최형묵/ 조희연 교수는 한국의 사회운동을 보수-진보-자유주의로 분류하는데, 기독교 내부를 진단할 때도 과거와 같은 진보와 보수 단순 도식으론 다 설명이 안 된다. 과거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할 때는 진보진영이 견고하고 단일한 대오를 형성하고 있어서 그 구분이 유용했지만, 이제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넓게 펼쳐놓고 보아야 할 시점에 온 것 같다. 여러 사람이 지적한 것처럼 과거 민주화운동 시절 자유주의자가 진보주의자가 될 수밖에 없었던 맥락을 면밀히 살펴봐야 한다.


김진호/ 보수와 진보에 관한 문제의식이 변화한 것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권위주의 시대에 진보라는 감각은 반독재와 관련되어 있었다. 그러나 민주화된 이후 반독재 민주화운동은 무의미해졌다. 지금의 진보는 ‘사회적 자원의 배분’과 더 밀접한 연관이 있다. 그런데 권력에 진출한 많은 과거의 진보인사들은, 최 목사가 잘 지적했듯이, 사회적 배분에 관해서는 보수적 태도를 가지면서 스스로는 아직도 진보라고 생각한다. 그것은 민주화 이후 진보와 보수에 대한 감각이 아직 합의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해서 보수주의 진보주의가 적절하게 형성되어 있지 않은 채, 정치적 지형에 따라 임의적으로 결속과 이반이 나타나고 있다. 그런 점에서 현재 기독교의 정치세력화는 민주화 이후 한국 보수주의의 형성과 관련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역사적으로 민주화 문제는 두 개 차원에서 얘기될 수 있다. 곧 ‘시민의 퇴출 가능성’과 ‘퇴출된 비시민들의 권리 박탈 위기’, 그리고 이에 대응하는 제도화 과정이 민주화의 내용으로 나타났다고 할 수 있다. 이 제도화는 두 가지 안보 시스템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시민적 안보’의 장치와 ‘비시민적 안보’의 장치가 그것이다. 후자의 대표적인 것이 복지문제라면, 전자는 시민의 퇴출억제 장치의 확보라고 할 수 있다. 시민적 안보와 비시민적 안보 간에 갈등과 경합, 교섭이 진행되면서 민주적인 제도화가 이루어진다. 보수주의는 시민적 안보와 비시민적 안보를 갈등관계로 보면서 시민적 안보를 우선에 두었다. 진보는 이 두 가지가 연계되었다고 보는 경향이다. 그러면서 구체적으로는 지형에 따라 내용이 형성된다. 오늘날 보수주의는 신자유주의와 결합되어 있다.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가 미국을 중심으로 형성되고 세계화되고 있는데, 한국 사회는 IMF 체제 이후 거기에 깊숙이 휘말려 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이러한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보수주의의 열렬한 추종자로 조직되고 있다. 이미 평양대부흥운동에서 시작된 친미적 감각은 민주화 이후의 사회에서도 미국을, 미국적 기독교 보수주의를 모방하고 있는 것이다. 해서 오늘 한국 보수주의의 역사적 태동에 중요한 고리가 한국 기독교에 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백찬홍/ 진보나 보수는 일상생활과 제도 속에서 발현되어야 하는데, 우리는 거의 헤게모니 싸움에 집중되어 있다. 즉 생활세계에 대한 관심보다는 정치권력을 어떻게 쟁취할 것인가에 매달려 있다. 노무현 정권의 경우 친재벌 반노동자 정책을 적극 추진하면서도 자칭 유연한 진보라며 권력재창출에 혈안이 되어 있고, 한나라당은 북미 관계가 유화국면에 접어들자 반북이었던 기존 당론을 재빨리 바꿔 평화담론을 수용하고 있다. 양쪽 모두 권력만 잡을 수 있다면 무슨 짓이든 하겠다는 것이다.


최형묵/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권에 대항해 반독재 민주화운동을 하면 다 진보였는데, 지금은 보수와 진보로 그 이념지형을 단순하게 구분하기 어려운 상태다. 민주주의 자체가 불안하고 유동적인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은 한국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다. 과거에는 보수세력과 헤게모니를 다투는 것으로 충분했을지 모르나, 민주화 이후에는 권력 자체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 그런데도 진보세력은 둔감하다. 그러니 교회 구조나 신앙풍토가 바뀌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 점에서 과거 진보로 불리던 세력이 여전히 진보일 수 있는지 되물어야 한다.

  

도덕적 의제를 정치화한다


김진호/ 보수교회는 미군정에서 박 정권에 이르는 교회 성장과정에서 지속적으로 권력의 특혜를 받아왔다. 그런 유착은 비공식적으로 이루어졌다. 그래서 보수교회는 정교분리를 주장하면서도 정치적으로 특혜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런데 민주화가 진행되면서 진보개혁세력에게 특혜가 돌아갔다. 이것이 기독교 보수주의에게는 위기감으로 작용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강남과 신도시를 중심으로 한 신흥대형교회들, 그리고 복음주의권을 중심으로 한 기독교NGO가 등장하면서 보수 기독교권에 새 지형이 짜지고 있다. 이들은 60~70년대 성장한 순복음교회나 금란교회 같은 선발대형교회보다 합리적이고 도덕적인 모습으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예를 들어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은 윤리문제를 사회적 이슈로 만들고 있고, 보수적 정치운동인 뉴라이트 경향의 ‘기독교사회책임’은 정권창출 후에 도덕 문제를 정치화할 수 있다. 즉 미국의 기독교 우파가 낙태 같은 도덕적 이슈를 정치화한 것처럼 한국 기독교도 정치의 도덕화를 추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도덕적 의제가 정치적 의제가 된다는 것을 의미하는 데 이 가능성을 염두에 둔다면 한국 기독교의 정치적 태도는 한국 사회의 보수주의 움직임에 중요한 역할을 할 가능성이 있다. 백 선생이 얘기한 것처럼, 보수주의가 정치 영역을 넘어서 일상화되고 그것이 다시 정치화되는 양상이 한국 기독교의 정치세력화와 연관해서 상상할 수 있다는 것이다.


최형묵/ 덧붙여 말하면 보수주의 기독교가 정교분리 시절을 지나 정치참여로 선회한 것은 민주주의 제도화에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지금까지는 논쟁의 내용이 불투명하고 소모적으로 토론이 진행되었는데, 보수진영이 좀더 토론 가능하고 합리적인 내용을 가진다면 진보와 보수의 차이가 더 선명해지고 이념지형이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이다.


백찬홍/ 미국에서 기독교 우파는 60년대 흑인 민권투쟁과 여권신장, 낙태 합법화 등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되었다. 그 중에 낙태는 중요한 사안이었다. 보수 기독교인들에게 낙태는 창조질서를 거역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졌고 아직까지 진보와 보수가 거세게 부딪치는 지점이다. 도덕의 정치화는 한국사회가 좀더 보수적으로 변하면 받아들여질 가능성이 있다. 지금도 자살, 마약, 병역, 동성애 문제는 보수층이 민감하게 생각하고 권력이 적극적으로 개입하기를 바라는 사안이다.


김진호/ 기독교적 도덕주의는, 미국의 역사가 보여주고 있듯이, 대화적이라기보다는 도그마적이다. 상대를 존중하기보다는 자기 중심의 도덕을 배타적으로 관철시키려는 태도다. 그것을 정치화한다는 것은 곧 특정한 집단의 이해를 법적, 제도적으로 일반화하겠다는 것을 의미한다. 앞서도 말했듯이, 우리 사회는 아직 진보나 보수가 일상적인 감각 속에서 작동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의 도덕화’는 일상을 정치화하는 것이며 동시에 정치를 일상화하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일상적 문제를 둘러싼 정치 투쟁이 전개될 수 있다. 그런데 정치의 도덕화는 이러한 대화를 합리적 방식보다는 도그마적 방식으로 풀어내려 한다. 그것은 시민의 합의를 이벤트식으로 도출하려는 경향을 강화한다. 현재 한국 기독교가 지지하는 후보가 이벤트의 귀재라는 점은 한국 기독교적 보수주의의 정치 세력화가 왜 우려스러운지를 시사한다. 이른바 ‘손상된 민주주의’가 한국 민주주의의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백찬홍/ 87년 이후 개혁 또는 진보세력이 약진하다가 IMF사태 이후국민들의 경제 불안과 현 집권세력에 대한 실망으로 보수 흐름이 더 강해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지금보다 더 수구적인 정권이 들어서면 이들과 연대했던 기독교 보수세력의 영향력이 지금 보다 훨씬 커질 것으로 보인다. 독재시절 강력한 전선을 구축했던 진보기독교권이 오히려 상당히 위축되버린 반면, 보수기독교권은 여전히 물적·인적자원이 탄탄하다. 이 때문에 향후 보수기독교권이 윤리, 도덕을 앞세워 주도권을 장악할 가능성이 높다.


‘잃어버린 양 한 마리’에 대한 관심


최형묵/ 보수주의가 도덕적 의제로 정치화하고 생활영역을 지배하려는 것과 다른 차원에서 진보 역시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기독교 진보진영은  정치권력의 문제에 집중하면서 다른 문제에 대해서는 도외시 하는 경향이  있다. 일상 삶의 관계에 대해서 진보적 의식이 어떻게 표출되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 70~80년대 진보적인 목회자들도 여전히 가부장적인 교회구조를 유지하고 있다. 교회에서 목사 한 사람만 진보적인 경우도 있다. 실제 일상영역에서 관계의 변화는 체화되지 않았다. 여전히 진보는 불안정하다.


백찬홍/ 한때 반독재 인권운동의 상징이었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의 경우 민주화 이후에 오히려 총무자격을 목회자에게만 주기로 하는 등 제도적으로 후퇴했고 다른 조직도 비슷한 실정이다. 현재 진보 기독교운동권에서는 목사가 되어 남든지 아니면 떠나든지 양자택일해야 할 상황이다. 몇 년 전 진보인사 간에 말다툼이 있었는데 그 중 목사였던 분이 상대의 주장보다는 어디 목사에게 덤비냐는 식으로 깔아뭉개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민주화가 제도화로 변질되면서 운동성은 사라지고 역사만 남은 것이다. 이것은 진보를 포함해 한국 기독교가 가진 한계라고 할 수 있다.


김진호/ 그런 점에서 우리 사회 이념 지형이 굉장히 허구적이고 실천적이지 못한 것 같다. 특히 한국의 기독교는 회개를 너무 손쉽게 한다. 몇 년 전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강원룡 목사와 조용기 목사 등이 과거의 잘못을 회개하는 행사가 언론에 크게 보도된 적이 있었는데 별다른 감흥 없이 끝났다. 한국 기독교는 문화적인 변화가 자기 몸에 습득되면 너무 쉽게 자기 입장을 바꾸고 합리화 한다.


최형묵/ 정치과잉이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 진보적 기독교라면 시민-비시민화 과정에서 거창한 것보다는 ‘잃어버린 양 하나’와 ‘유의미한 소수’에 대해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즉 삶의 관계를 어떻게 짤 거냐. 기독교에서 제시할 수 있는 진보의 관점과 배려를 어떻게 사회적으로 발전시켜 나가느냐가 큰 과제다. 야곱의 사닥다리를 올라가듯 저 높은 곳을 선망하는 태도로는 안 된다.


김진호/ 우리 사회에서 시민은 국가와 거래를 시작하자마자 자기를 소비자로 부르는 광고산업과 직접 대면하고 있다. 자본은 끊임없이 너의 취향이 뭐냐고 물어보고 있는 것이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에는 영화 ‘효자동 이발사’에 나오는 주인공 성한모처럼 자기 가족을 위한 희생과 국가의 굳건한 발전을 동일시하고 욕망하였다면, 요즘은 ‘자기에 대한 인정투쟁’이 주된 욕망의 내용이다. 자신이 잃어버린 것에 대한 과도한 강박에 빠져 있다. 한데 후발대형교회는 적극적인 자아에 대한 욕망을 신앙화하면서 선교적 성공을 거두었다. 그런데 이러한 신앙문화의 문제는 타자가 망각되어 있다는 점이다.

치열한 인정투쟁의 사회에서 낙오된 ‘잃어버린 한 마리 양’과의 연대성은 우리가 저지른 죄의 회개와 연대성을 의미한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구하는 것이 우리 사회 모두에게 필요한 것이고 이런 논리가 시민영역으로 확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기독교 보수주의는 끊임없이 자신의 생존에만 관심을 둔 적극적 자아만을 유포한다. 다른 사람 아픈 곳을 만져주는 것이 아니고 자기의 아픈 곳에만 관심이 있다.


백찬홍/ 서구는 300년간 계몽주의, 과학혁명,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민주주의가 생활화되었다. 그에 비해 지난 30년 간 압축성장을 해온 우리 사회는 산업화에 걸맞은 주체적 시민이 형성되지 못했다. 오히려 시민사회가 형성되기도 전에 신자유주의의 파도에 휩쓸리면서 잃어버린 양을 돌볼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사람들의 마음이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마모되고 있다. 이제는 유치원 때부터 여든 살까지를 고민해야 하고 사회적으로 모럴해저드가 확산되고 있다. 일반 시민부터 공직자까지 한탕주의에 빠진 상황에서 교회라도 정신을 차려야 하는데 오히려 막가는 상황이다. 송두율 선생이 지적한 것처럼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과 가장 낙후된 국가보안법이 공존하는 사회의 단면이라고 할 수 있다.


김진호/ 그런 점에서 문민화 과정에서 정권을 잡은 김대중, 노무현 정권은 역사적 흐름을 바꿀 수 있는 과제를 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오히려 지난 10년 간 시민적 안보시스템만 강화시키고 비시민적인 안보시스템을 악화시킨 주역이 되었다. 사실 우리 사회를 바꿀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닌데, 신자유주의 모델을 통해 양극화를 초래하고 한미FTA를 추동하는 역할에 앞장섰다. 우리 사회 진보 또는 개혁세력이 가지고 있는 내용의 부재가 낳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최형묵/ 노무현 정권이 한나라당이 할 일을 앞장서서 함으로써 진보개혁세력이 왜 정권을 잡았는지 의문시 되는 상황이다. 그와 관련하여 진보적인 기독교 인사들이 참여정부에 들어가 ‘의미 있는 소수’로서 역할을 했다기보다 그 역할에 동조해줬다는 점에서 폐해가 더 크다. 그런 점에서 진보 기독교 인사들의 정권참여에 대해 부정적인 평가를 할 수밖에 없다.


김진호/ 한국 사회는 압축적인 경제성장 만큼이나 매우 극적인 민주화 과정을 겪었다. 카니발적인 현상이라고나 할까. 수많은 전통적 가치가 와해되었고 많은 사회적 행위자의 권력이 해체되었다. 한데 그 카니발적 과정에서 비교적 잘 작동하고 있는 조직화된 세력은 무엇보다 자본이었다. 해서 민주화 이후 시민의 형성은 뼈속 깊숙이 자본 친화적으로 주체화되었다. 이제 거의 모든 시민은 자본가적으로 스스로를 생각하고 삶의 전략을 구상한다. 이럴 때 진보는 어렵지만 진보 나름의 틀을 구축해 나가야 했다. 그러나 현재까지 진보는 잘 형성되지도 못했고 방향조차 찾지 못하는 듯하다. 다른 분들이 말했지만 진보도 권력게임에 몰두하면서 자본주의적인 시민적 욕망을 부추기고 있다.


최형묵/ 반 FTA의 전도사가 된 정태인 선생도 한미FTA를 찬성하는 광고를 들으면, 유토피아 사회가 곧 올 것처럼 착각을 일으킨다고 한다. 자본의 달콤한 유혹에 빠진 일반 사람들이나 친미가 살길이라고 생각하는 교회신자들의 입장에서라면, 아마도 한미FTA는 복음 중에 복음일 것이다. 사람들이 자본친화적인 삶에 그만큼 길들여져 있다.


기독교 뉴라이트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


최형묵/ 흔히 민주화를 정치 절차의 합리성과 민주주의 제도화로 얘기하는데, 민주화 과정은 경제적 자유화도 동반한다. 한국 민주화의 과정은 정치적 자유가 민중의 삶을 안전하게 보장해주는 것과 상관이 없이 진행되었다. 그 점에서 민주화의 열매는 재벌이 다 따먹었다는 평가가 틀린 것은 아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보수주의, 뉴라이트는 정치 절차의 합리화에 대해서는 적극 옹호하지만 경제적 자유가 가져오는 폐해에 대해서는 별다른 대안 없이 70년대식 개발담론과 성장주의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과거 보수세력이 경제성장을 위해서 민주화보다 권위적 질서를 옹호했다면, 신보수나 뉴라이트 세력은 시장경제와 민주주의는 병행 발전하는 것이라는 입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이 합리적 보수의 핵심 주장이다. 이런 입장이라면 앞으로 개혁세력 내에서도 비슷한 주장이 나올 가능성이 있다. 기독교 경우는 현 정권에 참여한 기독교 인사들이 그렇게 변할 가능성이 높다. 서경석, 김진홍 목사는 겉으로는 뉴라이트를 주장하지만 사학법 문제에 대응하는 것을 보면 수구와 다를 바 없다. 진짜 합리적인 보수는 과거 진보진영 또 정권에 참여하고 있는 인사들 쪽에서 나올 것이다.


김진호/ 과거 진보적 교회들도, 심지어 진보적 신학교의 학생들도 후발대형교회가 주도하는 새로운 문화목회들을 학습하고 모방하고 있다. 비판의식이 결여된 모방은 식민화되고 있다는 것과 별다른 차이가 없다. 후발대형교회는 수구교회와는 다르다고 생각하지만 전체적으로 친미적 요소는 물론이고 자기 기준에 따라 타인, 타문화를 교화의 대상으로만 여긴다는 점에서 그 배타성은 선발대형교회와 차이가 없다. 다만 다른 것은 대중들에게 접근하는 방식이나 행동이 보다 세련되고 설득력 있는 외양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이들은 구보수의 막무가내식과 다르게 합리적 언어를 가지고 대중을 설득하기 때문에, 도덕의 무기화나 정치화를 구체적으로 추진하면서 일상 삶에 끼어들 가능성이 높은 편이다. 이점을 염두에 둔다면 기독교내 신보수주의 등장과 활성화는 우려스러운 지점이 될 것이다.


백찬홍/ 요즘 한국 사회는 ‘불안’이라는 망령이 지배한다. 이는 소수의 상위계층을 빼고 누구도 현재와 미래에 대한 희망이 없기 때문이다. 한때 정부와 시장을 견제하고 국민들의 신뢰가 높았던 시민운동도 요즘은 주춤한 상태다. 시장을 제외하고는 청와대, 국회를 포함한 정치권, 언론, 검찰 등 모든 권력이 살아 남기위해 서로 공격을 하고 있다. 기독교 진보세력도 올바른 담론과 비전이 없으면 그대로 신보수의 물결에 휩쓸려 갈 가능성이 높다. 사실 뉴라이트 세력의 선진화담론이라는 것이 철저히 시장주의에 포섭된 형태인데, 정권에 참여하는 기독교권 인사들 역시 한나라당 성향의 뉴라이트운동은 싫어하지만 선진화담론에는 동조하는 경향이 있다.


김진호/ 후발대형교회의 가치관에 경도되어가는 교인들이 늘고 있다. 기윤실과 같이 사회적으로 공인 받는 기독교NGO들의 활동은 진보개혁을 내걸고 활동하는 정치참여 인사들보다 훨씬 내실이 있다. 기독교 진보세력은 과거의 영광에서 머무르며 매너리즘에 빠져있지만, 복음주의권은 이념의 빈 공간을 채워가며 발전하고 있다.


최형묵/ 사회가 변하고 합리적 세력이 늘어가면서 교회 내부에서 기존의 배타적이면서 권위적인 틀을 벗어나려는 모습이 있는 것 같다. 여전히 보수적인 교회가 영향력이 크지만, 이들 교회나 조직들이 민주화된 사회 상황에 따라 내부의 합리적 경합을 용인하면서 그 영향력을 더욱 키울 가능성이 농후하다.


백찬홍/ 기독교 뉴라이트 세력은 노 정권에 대한 반발로 생겨난 정치 조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외에 후발대형교회나 기독NGO들이 도덕주의와 결합된 정치운동이 될지 사회운동으로 발전할지는 모르지만 현실정치에 직접 개입하지는 않을 것 같다. 그것보다는 시민운동과 사회운동의 형식으로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이 본격적으로 사회운동에 참여한다면 기존 시민운동과 경쟁관계가 될 것이다. 일전에도 기윤실과 일반 시민단체가 ‘성윤리 문제’로 충돌한 적이 있다.


최형묵/ 만약 한나라당으로 정권이 넘어간다면 노무현 정권에 참여했던 진보개혁 인사들 가운데 일부는 지금의 사이비 뉴라이트와 다른 형태의 신보수주의적 정치결사체가 될 가능성이 있다. 이들 인사들은 김대중 정권 때 이미 비슷한 조직을 만들었는데, 정권이 바뀌면 이전의 반독재 민주화운동과 다른 방식으로 새로운 정치사회운동을 펼칠 가능성이 있다.


유의미한 소수


김진호/ 최 목사님이 아까 ‘유의미한 소수’라는 말씀을 했는데 참 좋은 말이다. 기독교 단체 중에 평화운동을 하는 ‘개척자’라는 단체가 있다. 이들은 어떻게 보면 한국 기독교의 반항아들이다. 이들은 공동생활하면서 활동비라고도 할 수 없는 최소액의 비용으로 평화운동을 한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고 평화교육을 하며 분쟁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한다. 어떠한 권력적 요소도 개입시키지 않고 일상에서 수도자처럼 자발적 가난을 실천한다. 자신들의 가치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한국 교회 다수가 여전히 강고한 틀을 가지고 기득권에 안주하고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전쟁을 찬성하지만, 이들은 묵묵히 자신들에게 맡겨진 일을 하고 있다.


최형묵/ 이라크 파병 당시 여론조사를 보면, 전쟁 자체는 80퍼센트가 잘못이라고 답하지만 파병은 반반으로 갈린다. 가치판단과 현실 사이의 괴리가 있는데, 정권이 주장하는 국익이 나에게도 이익이 될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 같다. 아마 기독교인에게만 설문을 했다면 파병 찬성율은 더 높았을 것이다. 지금껏 그래왔던 대로, 힘이 있는 곳에 붙어 살면 이익이 된다는 생각에서 적극 찬성했을 것이다. 이러한 기독교에 절망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다른 가능성을 추구해야 한다. 소문난 잔치에 먹을 게 없는 것처럼, 지금까지 국익이니 실익이니 하는 것에 현혹되어 왔지만 어느 경우나 결국 이익은 힘 있는 자들에게만 돌아갔다. 이 시대는 ‘의미 있는 소수’로 살아가는 것에 굉장히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특히 기독교 운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80년대의 폭발성을 기대하는데, 이것 역시 권위주의 시대의 유산이고 힘에 의존하는 것이기에 이제는 지양해야 한다. 지금은 새로운 가치와 평화를 갈망하고 실천해야 할 때다.


백찬홍/ 진보나 보수나 어떻게 하면 주류로 편입될 수 있을지가 주관심사다. 민주노동당이 의석이 없을 때는 그런대로 건강했는데, 국회에 진출하자 내부 권력투쟁이 심해지고 심지어 선거부정까지 저질러졌다. 우리 사회 전체에 만연한 경향이다. 진보기독교 인사들 역시 과거에 민주화운동으로 투옥되고 고생했으니 지금은 보상받아야 되겠다는 심리가 작용했는지, 교회정치는 물론 현실정치도 참여해야겠다는 강박감에 젖어 있다. 60~70년대 진보교회가 역동적이었던 것은 민중의 삶 속에 그대로 녹아들었기 때문인데 말이다. 그 때 참여했던 분들 중 일부는 독재에 유착했던 인물들과 함께 연합기관의 대표가 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교회운동이 다 망하게 되어 있다. 지금이라도 의미 있는 소수가 되는 일에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야 한다. 현재 교회 일부에서는 외국인 노동자 지원, 생협운동, 극빈층을 위한 소액대출운동 및 자활사업 등을 활발하게 벌이고 있다.


최형묵/ 자본주의체제에 살면서 반자본주의적 삶이 가능하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비폭력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 기독교가 존재하는 이유는 여기서 찾을 수 있다. 사이비 민주주의 시대에서 새로운 민주주의를 만들어가야 한다.


백찬홍/ 오랫동안 교회연합기구에서 일했는데 그 속에 있으면 조직구조에 함몰되고 임기가 끝나면 어떻게든 그 언저리에서 새 자리를 찾아야 한다는 강박이 세진다. 진보기독교의 위기 중에 하나가 재정 대부분을 해외교회에 의존하고 있면서 스스로 자립기반을 만들지 못했기 때문이다. 몇몇 복음주의 단체들은 회원들의 회비나 약정헌금, 국내 교회의 지원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진보 기독교단체들도 이 같은 방법을 응용해 볼 필요가 있다.


최형묵/ 성서에 히브리인들이 지치지 않고 여리고성을 돈 결과 무너뜨렸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성이 강고한 것 같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그 체제에 자신이 순응하지 않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스스로를 돌아보면 모순적인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나 스스로 비판하는 교회구조에 깊숙히 연루되어 활동하고 있기도 하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그 위계질서 안에서 한 부품처럼 기능하지 않도록 늘 경계한다. 그런 면에서 아래로부터의 연대를 추구하고 있는 대안적 교회운동과 실천적 신학운동은 나에게 소중한 경험이다.


김진호/ 다른 예를 들면 ‘작은 예수 자매회’라는 곳이 있다. 이 수도회는 4명이 한 단위로 이루어지고 같이 살면서 공장에서 일한다. 큰 공장은 안가고 작은 공장에서 일한다. 제복도 따로 없이 머리에 수건만 쓰고 나머지는 청바지 같은 평상복을 입는다고 한다. 열악한 노동현장에서 일하고 또 명상과 기도를 함께 한다고 한다. 노동강도가 너무 세서 그런지 나이가 들면 신경통으로 온몸이 지끈거린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분들은 그게 수도라는 것이다. 이 수도회는 그룹이 작아서 권위적인 구조가 형성되지 않는다. 어떤 영상작가가 취재하려고 해도 알려지길 원치 않는다면서 촬영을 거절했다고 한다. 이처럼 자본주의 틀에 순응하지 않는 이탈자들도 있다. 우리에게는 이런 소중한 실천들을 간직하고 의미화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


백찬홍/ 교회의 양적, 물적 성장과 개인의 성공이 신의 은총이라고 생각하는 미국식 복음주의가 지배하면서 유의미한 일을 하는 목회자들조차 심리적으로 위축되고 있다. 서로를 교인과 재정규모로 평가하는 문화부터 없어져야 한다. 자발적 가난을 실천하고 잃어버린 양들을 위해 헌신하는 목회자나 신도들의 이야기가 많이 소개되는 것도 나쁘지 않다. 본인들이야 숨기고 싶겠지만, 그 같은 일에 참여하고자 하는 이들에게는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분들이 늘어나야 기독교를 기독교답게 할 수 있고, 사람들도 그나마 기독교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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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례한 자들의 크리스마스>/ 최형묵 백찬홍 김진호 지음/ 평사리 펴냄/ 316쪽/ 1만 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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