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교회로 간 ‘민중의 아버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3-05 14:11
조회
3863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54번째 원고입니다(070305).



교회로 간 ‘민중의 아버지’



우리들에게 응답하소서 혀짤린 하나님 / 우리 기도 들으소서 귀먹은 하나님 /

얼굴을 돌리시는 화상당한 하나님 / 그래도 당신은 하나뿐인 늙으신[민중의] 아버지 //

하나님 당신은 죽어버렸나 / 어두운 골목에서 울고 계실까 /

쓰레기더미에 묻혀버렸나 가엾은 하나님      

                

1980년대 젊은이들이 애창했던 ‘민중의 아버지’ 노랫말이다. 이 노래는 최근 안치환이 다시 불러 음반에 수록되었고, 얼마 전 이미 고인이 된 그 지은이 김흥겸 10주기를 맞아 언론에서 재조명되기도 했다. 그 지은이가 절친했던 친구여서만이 아니라, 지나 온 한 시대의 절규를 담고 있다는 점에서 이 노래는 언제나 특별한 감회를 불러일으킨다. 학생시절 나는 이 노래를 시위의 현장이던 캠퍼스와 거리에서, 그리고 시대의 아픔을 토로하고 울부짖던 술집에서 친구들과 함께 목청껏 외쳐 불렀다. 그렇기에 이 노래를 다시 부르거나 들을 때면 그 시절이 고스란히 되살아나는 느낌을 받는다.


지난주일 이 노래를 교회 성가대가 예배 한가운데 특별찬양 시간에 불렀다. 내가 미리 주문한 바도 없는데 성가대는 그 노래를 준비했고, 그날따라 무거운 메시지와 함께 겹쳐 교회당 안에 울려 퍼졌다. 또 다시 가슴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돌이켜 곱씹어보자니 한편으로 묘한 느낌이 인다. 엄격한 격식을 갖춘 예배 한 가운데 울려 퍼진 한 시대의 탄식과 절규라! 예배는 마땅히 사건에 대한 기억이요 재현이라 생각하고 있지만, 어디 현실이 그런가? 예수사건에 대한 끊임없는 기억이요 재현이어야 할 예배는 오히려 생생했던 사건에 대한 기억을 무디게 만들고 그 사건을 순화시켜 마침내는 박제화하기까지 한다. 그래서 2천년 전 갈릴리 민중들과 함께 했던 예수는 간 데 없고 저마다 편안한 자기만의 예수 허상만 예배에 참여하는 이들에게 남겨지고 있는지 모른다. 1980년대 민중의 절규와 탄식 또한 그렇게 의례 속에서 박제화되고 있는 것일까?


하지만 아닐 것이다. 어쩌면 섬뜩하기조차 한 그 노래를 다시 부르는 것은 시대의 아픔에 무뎌진 우리의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며 동시에 오늘의 아픔에 눈길을 돌리고자 하는 몸부림일 것이다. 제도화된 교회가 예수사건을 망각시키고 있는 것에 대항하여 예수사건에 대한 기억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려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다. 그렇듯이 예배당 안에서 민중의 아버지를 다시 부르는 것은 그 노래 속에 담긴 시대의 절규와 탄식을 다시 기억함으로써 오늘 우리 삶의 현장에서 들려오는 아픔의 호소에 더욱 민감해지는 교회를 만들고자 하는 의지의 표현이라 믿어본다.
1_L_1173676994.jpg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전체 1
  • 2007-07-01 21:53
    민중을 우상 숭배하는 본질이 잘 못 된 자들의 항변이로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