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목사님, 주보 그림 바꿔주세요!”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7-05-13 23:05
조회
451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56번째 원고입니다(070513).


“목사님, 주보 그림 바꿔주세요!”


아이들이 자라는 것을 보면 세월의 변화를 실감한다. 삐약삐약 옹알옹알 대던 녀석들이 어느새 커서 와글와글 댄다. 교회당에 놓인 탁자에 이마 부딪힐까 조바심을 자아냈었는데 어느 새 부쩍 커서 그 탁자에 양 팔을 짚고 장난을 쳐대는 녀석이 있는가 하면, 얌전한 새침데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자라면서 제법 ‘터프’해지는 녀석도 있다.

주일 하루 종일 교회당 안팎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진원이 녀석이 엄마 아빠랑 돌아갈 때쯤 되어서 아주 저돌적인 태세로 요청을 한다. “목사님, 주보 그림 바꿔주세요!” “왜?” “이상해요.” 어린이예배 주보 표지에 실린 그림을 두고 하는 말이다. 예수님이 아이들과 함께 놀며 딱지치기 하는 그림으로, 선생님이 심사숙고해 골라 실은 제법 멋진 그림이다. 거 참, 개구쟁이들의 친구 예수님의 모습이 이상하다니! 그래서 그럼 어떤 그림이 좋은지 물었더니 “자동차 타는 걸로 바꿔 줘요.” 한다.

다음 주일 선생님에게 귀띔을 해줬더니 그림이 바뀌었다. 아마도 자동차 타는 그림으로 마땅한 게 없었던 모양이다. 봄 농사철에 어울리게 예수님이 팔 걷어 부치고 쟁기질을 하는 그림으로 바뀌었다. 자동차 타는 그림이 아니라서 혹시나 싶어 확인을 했다. “바뀐 그림 마음에 들어?” “예, 마음에 들어요.” 그렇게 답하고 나서 이 녀석 곧바로 의의양양하게 친구들에게 말한다. “내가 목사님한테 바꿔달라고 해서 바뀐 거야!”

아마도 뿌듯했나보다. 자기가 요구해서 뭔가가 바뀌었다는 사실이 제 딴에는 자랑할 만한 일이었던 게다. ‘그래, 알았다.’ 하고 무심히 지나쳐버렸다면 큰일 날 뻔 했다. 그랬더라면 아마도 ‘교회에서 목사님한테 이야기해봐야 소용없다’고 생각하며 은연중 불신을 키우게 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니 말이다. 녀석이 하도 뿌듯하게 친구들에게 말하는 걸 보니 나도 뿌듯해졌다. “어린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들의 것이다.” 마치 예수님의 그 말씀을 실천한 듯이 말이다.  

그래, 그렇게 당당하게 이야기할 수 있고 또 그런 만큼 당당한 이야기가 받아들여지는 관계가 언제나 지속되면 얼마나 좋을까나! 종종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유년 시절의 교회에서의 가슴 아픈 기억 때문에 교회를 영 멀리하게 되는 사람들도 적지 않은 모양이다. 그래서 어린아이들에게 거의 개구쟁이처럼 같이 놀아주다가도, 혹 내가 우리의 아이들에게 무심코 한 일이 상처가 되지는 않을까 조심스러울 때도 많다. 그러나 그날은 나도 신났단다, 진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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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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