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목사님, 파리채 어딨어요?”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10-10 00:25
조회
3108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48번째 원고입니다(061010).


“목사님, 파리채 어딨어요?”


교회당 공간이 넉넉지 않다 보니 주일마다 아이들의 소리가 요란하다. 어른들이 예배드리기 한 시간 전 어린이예배를 드리는 중에는 비교적 점잖지만, 자기들만의 예배가 끝나고 나면 안팎을 드낙거리며 소란을 피워댄다. 어른예배 시간중에는 어린이방에서 비디오를 보거나 만화를 보도록 유도를 해보기도 하지만 그것도 자기네들 기분 내키는 때만 통할 뿐 별 묘책은 되지 못한다. “지금은 예배중입니다”, 예쁘게 안내판을 만들어놓고 그 시간만큼은 조용히 하기로 약속해 봐도 소용없다.

어쩌겠는가? 어른들의 말을 따라 긴 시간을 조용히 숨죽이고 있는 것이 어린아이들에게 어찌 가능한 일이겠는가? 무려 한 시간 동안 소곤소곤 말하고 살금살금 드낙거리라는 어른들의 요구는 그야말로 어른들의 희망사항일 뿐 아이들에게는 고문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별도의 안정된 공간이 마련되지 않는 한 사실상 해결책이 없는 셈이다. 거꾸로 어른들이 적응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으로 그저 웬만한 소란은 감당할 만큼 다들 익숙해져 있다. 설교를 하는 중에도 때때로 거슬릴 때가 있지만, 그럴 경우에는 목소리를 더 높여 그 위기를 넘긴다.

그런데 저번 주일에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사태가 벌어지고 말았다. 한참 설교가 절정에 다다를 무렵, 밖에서 신나게 뛰어놀던 녀석이 교회당 문을 확 열어 제치고 들어오면서 뭔가 큰소리로 외쳐댔다. 설교에 몰입해 있던 터라 “목사님!” 하고 부르는 소리만 들었지 그 다음 소리는 들을 수 없었다. 내 목소리는 더욱 고조되었고 설교는 계속되었다. 한데 사태가 심상치 않았다. 회중석 교우들의 얼굴에 일제히 잔잔한 미소가 이는가 싶었는데,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영 표정들이 말이 아니었다.

거기다 대고 암만 설교에 열을 올린다 한들 통 먹히기 어려울 것 같은 사태였다. 설교를 멈추고 물었다. “지금 뭐라고 그랬습니까?” 그때서야 다들 맘껏 웃으며 내가 미처 듣지 못했던 그 소리를 전해준다. “목사님, 파리채 어딨어요?”라고 했단다. 덩달아 크게 웃을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누가 파리채좀 찾아주세요.” 그렇게 사태를 수습하고 위기를 모면했다.

예배가 끝나고 난 후 자초지종을 듣자니, 아이들이 밖에서 놀고 있는데 벌 한 마리가 윙윙거리며 위협을 했던 모양이다. 그 위험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골목대장 준후 녀석이 교회당에서 본 적이 있는 파리채를 찾아 의기양양하게 나선 것이었다. 교회당 사정은 목사님이 가장 잘 안다고 생각하였을 테니, 거두절미하고 문을 열자마자 목사님께 긴급신호를 보냈던 것이다.

어쨌거나 온 교우들에게는 즐거운 교회의 아름다운 일화 하나를 더해준 셈이 되었다. 녀석! 정작 스스로는 훗날 그 일을 기억이나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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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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