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시간에 쫓겨서야 되겠는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11-21 10:31
조회
3014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50번째 원고입니다(061121).


시간에 쫓겨서야 되겠는가?


모처럼의 안식년 휴가를 병가로 대신해야 했다. 나의 잠행과 은거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밝히지 못했던 사실을 이제야 실토한다. 안식년 휴가를 얻어 대만으로 떠났다가 병으로 죽을둥살둥 했다. 처음에는 곧 나아지겠지 하는 기대로 버텼지만, 사태가 심상치 않아 며칠간 연수 프로그램에도 참여하지 못한 채 휴식을 취했다. 말이 휴식이지 고열과 두통으로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비몽사몽 병고와의 사투였다.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종일 침상을 땀으로 적시며 뒹굴어야 했다. 병원을 오가며 치료를 했지만 차도가 없어 결국 귀국하기로 했다. 고마운 선배 목사님의 동행으로 병든 몸을 끌고 귀국할 수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니 마중나온 집사람과 교회 박 집사는 아연실색하는 표정이다. 그저 아프다는 것으로만 알고 있었는데, 몰골이 그 지경이 되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강시 같은 모습이었단다. 집에도 들르지 못한 채 공항에서 곧바로 병원으로 입원했다. 난생처음 팔뚝에 링거주사를 꼽고 병원신세를 졌다. 본격적인 치료 덕분인지 입원 하룻밤을 지나고 나면서부터 열이 가라앉기 시작했다. 꼬박 일주일 병원신세를 지고 난 후에야 퇴원했다. 의사는 아직 회복된 것이 아니니 절대 무리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집에 돌아와 약으로 계속 치료를 하며 은거생활에 들어갔다. 교회는 예정된 안식년 휴가기간 계획을 그대로 따르기로 했다. 어딘가 조용한 곳으로 떠나고 싶은 마음도 있었지만 병든 몸으로 나서는 것을 불안해하는 집사람의 만류로 그냥 집에서 요양 겸 은거생활을 하기로 했다. 열병으로 체력이 바닥난 상태라 식은땀이 밴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머리가 몽롱하다. 하지만 불쾌한 통증은 없으니 가벼운 생활에 어려움은 없다. 한 주간, 두 주간을 지내자니 다소 갑갑한 느낌도 일지만 그 나름의 생활리듬이 생긴다.

‘시간을 몰고 다녀야지, 시간에 쫓겨서야 되겠습니까?’ 누가 그랬다던가? 계획하고 예정한 시간을 따라 움직이는 자유로움을 만끽하고 있는 것 같다. 현실의 일상 그 자체는 아니고, 은거 중 집안에서의 제한된 일상이기는 하지만 그 자유로운 시간의 의미를 알 것 같다. 틈틈이 책을 읽고 틈틈이 집안일을 돌보고, 또 그 밖의 필요한 일들을 느긋하게 해나가는 생활 속에서 시간을 스스로 완전히 통제하고 있는 것 같다. 강요에 쫓기는 시간이 아니라 스스로 계획하고 예측하는 시간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전화마저 차단해뒀으니, 전화벨 소리 때문에 화장실에서 급히 뛰쳐나와야 하는 사태도 없다.

이제 곧 은거생활을 청산하고 현실의 일상으로 복귀해야 한다. 지난 시간 살아온 것처럼 쫓기는 생활을 반복하고 싶지 않다. 병가로 대신한 안식년 휴가의 교훈을 생활 속에서 얼마나 지켜나갈 수 있을까? 단단한 각오가 필요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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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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