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바울서신 읽기 46] 그리스도의 일꾼 - 고린도전서 4:1~5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4-12-17 21:57
조회
881
천안살림교회 2014년 수요 성서연구

바울서신(고린도전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4년 12월 17일 / 최형묵 목사


제46강 그리스도의 일꾼 - 고린도전서 4:1~5



1. 그리스도의 일꾼의 신실성 -4:1~2


이 대목에서 바울은 고린도교회의 문제(분열)가 사도적 지도자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유념하면서 이야기를 풀어간다.

바로 앞에서 지도자들이 공동체 속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와 하나님에게 속해 있다고 했다. 여기서 바울은 바로 그 사실을 다시금 강조하며 그 의미를 더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일꾼(종)이요 관리인으로 봐달라고 요청한다. 여기서 일꾼과 관리인은 같은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다만 하나님의 비밀을 맡았다고 밝히면서 일꾼보다는 보다 구체적인 의미를 지니는 관리인이라는 말로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바울은 그 지도자들을 단수로서가 아니라 복수로 언급하고 있다. 자신과 아볼로를 명백히 의식하고 있는 것이다. 베드로까지 의식했을까? 이 말을 하는 순간 바울이 베드로를 의식하고 있었을지 않았을지 궁금증을 자아내기는 하지만, 바울 이후의 상황에서 이 이야기는 모든 공동체의 지도자들에게 적용될 수 있음은 두말할 것 없다.

어쨌든 바울은 공동체의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관리인인 만큼, 그 관리인에게 요구되는 것은 일을 맡겨준 분에 대한 신실성이라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나아가 하나님께서 맡겨준 일을 감당하는 것이 중요하지, 지도자들의 그 밖의 어떤 요인이 중요한 것은 아니라는 이야기이다. 그 지도자들을 평가하는 기준은 맡겨진 일을 얼마만큼 신실하게 감당하느냐 하는 점에서만 평가되어야 한다는 것을 말한다.


2. 오직 하나님에 의해 평가되는 삶 - 4:3~5


바울은 자신이 고린도교회 사람들에 의해서나 아니면 또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 평가받는 것을 중요치 않게 생각한다. 뿐만 아니라 자기 스스로 판단하는 것도 삼간다고 말한다. 자신의 임의적 판단을 삼간다는 뜻이다.

그러나 곧바로 이어서 바울은 자신이 스스로를 판단하고 있다는 것을 내비친다. 자신은 양심에 거리낌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초점은 설령 자신이 스스로를 거리낌 없다고 판단할 때조차도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심판하시는 주님의 뜻에 따라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바울의 이와 같은 주장은 상당히 복잡한 문제를 제기할 수 있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매 순간 판단하는 것 자체를 중단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또한 양심에 따라 판단하는 것이 부질없다는 이야기인가 하는 문제를 야기한다. 그 자체가 전적으로 무모하다고 보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다만 바울이 여기서 강조하는 것은, 궁극적 판단의 차원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어떤 사람에 대해, 어떤 일에 대해 이런저런 판단을 할 수 있고 그때 우리는 저마다 양심에 따라 그렇게 할 수 있지만, 그것을 절대화할 수 없다는 것으로, 이 주장을 이해할 때 우리는 그 본뜻에 다가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바울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가 거리낌이 없다고 느끼는 것조차도 전적으로 자신의 양심에 의해서가 아니라 궁극적으로 자신을 판단하는 주님의 뜻에 대한 신실성에 의해 확증될 수 있는 것이라 말한다.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 신실성을 어떻게 확증할 수 있는지 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그것마저 그저 주관적인 것 아니겠느냐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바울도 그 점을 의식하였을 것이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것을 궁극적 차원에 내맡기는 태도를 취한다. 5절의 내용이 그것을 말하고 있다. 주께서 오실 때에 모든 것이 드러날 것이므로 아무것도 미리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이것은 매순간 어떤 것에 대해 판단하며 살아야 하는 인간 실존 자체를 부정한 것이라기보다는 매순간의 판단을 절대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말한다. 설령 양심에 비추어 흠 없는 것으로 판단된다 할지라도 그것마저 최종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말라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끝까지 하나님의 뜻에 맡기는 그리스도인의 실존을 강조하고 있다.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급진적인 윤리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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