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두 배로 축복하지는 못할지언정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7-13 23:20
조회
3441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43번째 원고입니다(060713).


두 배로 축복하지는 못할지언정


목사의 설교가 눈 뜨고 하는 설교라면, 장로의 대표기도는 대개 눈감고 하는 설교인 경우가 많다. 눈 감고 10분, 15분 계속 이어질 때가 흔하다. 그럴 때 대개 사람들은 단잠을 잔다. 어떤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는 목사마저 단잠에 빠지고 말았다. 찬송소리에 깨어 일어나 찬송이 끝나자마자 축도를 해버렸다. 그렇게 예배가 끝났더라면 정말 얼마나 은혜로웠을까? 그러나 뒤늦게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고 설교를 비롯해 마저 남은 순서를 다 진행하고 다시 축도를 하고 예배를 마쳤단다.

그건 그래도 괜찮다. 그런 실수라면 가끔 고의적으로 권해볼 만하지 않을까? 덕분에 교인들이 두 배의 축복을 누릴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러나 목사의 실수로 한 차례 축복의 기회를 놓쳐버렸다면 그 당사자의 심정은 어떨까? 남의 이야기가 아니라 내 이야기다. 내가 그렇게 누군가의 축복 기회를 돌려버린 황당무계한 실수를 저질렀다.

예배에 몰입해 있는 목사는 이미 반쯤은 제정신이 아니다. 제정신 아니라는 게 그야말로 정신 나갔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모든 잡념을 지우고 순전히 예배의 상황에 몰입하기에 평소의 상태와는 다른 지경에 빠진다. 평소의 상념과 심경에 붙잡혀 있다면 어찌 감히 회중 앞에서 예배를 인도할 수 있을 것인가? 단순히 습관적으로 반복해서가 아니라 매순간 몰입할 수 있기에 감히 예배 인도자로 나설 수 있다. 어쩌면 가장 맑은 정신상태로 목사는 예배에 임한다. 평소의 복잡한 잡념들을 지우고 맑은 상태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제정신이 아닐 뿐이다. 목사의 총기가 가장 빛나는 순간일 수도 있다.

그런데, 그런데... 어쩌자고 엉뚱한 실수를 할 수 있단 말인가? 자초자종을 말하면 이렇다. 우리교회에서는 봉헌할 때면 봉헌기도와 더불어 봉헌위원을 맡은 이를 위한 축복기도를 항상 함께 드린다. 실수를 저지른 그 날도 예외 없이 혼신을 다해 축복기도를 드렸다. 한데, 아뿔싸! 눈을 뜨고 보니 다른 교우가 아닌가? 그 황당함이라니? 어째 그랬을까? 기도를 드리기에 앞서 순간 착각했던 모양이다. ‘어, 어째 대표기도를 맡았던 분이 봉헌위원까지 하지?’ 하는 의문을 가졌지만, 정해진 순서와 다르더라도 바로 앞에 선 이를 위해 기도도리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순간적인 나의 착각과 달리 그 날 순서는 제대로 지켜지고 있었다. 기도드리는 내내 교우들과 당사자는 또 얼마나 황당, 당황했을까? 예배중이었지만 곧바로 실수를 인정하고 당사자를 위해 더 깊이 기도하겠노라고 선언했다.

아, 돌이켜 생각하니 마음으로 다짐할 것뿐만 아니라 그 순간 곧바로 다시 그 교우를 위해 기도했어야 했는데 후회스러워진다. 그 순간 이후는 정말 제정신이 아닌 상태에 빠져버렸다. 물론 예배는 잘 마쳤고, 실수를 인정한 목사에게 눈 흘기는 교우는 없었다. 그러나 어찌나 무겁게 마음이 내리눌리는 기분이던지!

“박집사님, 얼마나 서운하셨는지요? 박집사님과 가정에 더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더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채찍으로 받아들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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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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