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민망한 광고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8-22 12:28
조회
3183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45번째 원고입니다(060822).


민망한 광고


교회주보에 실리는 광고 가운데 민망하다싶은 게 있다. ‘주일성수를 합시다’, ‘예배시간을 잘 지킵시다’ 등등이다. 새삼 말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 광고가 나간다는 것은 새삼 말해야 할 필요가 없는 것이 안 지켜지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그걸 지키지 못하는 교우들을 마치 유치원생이나 초등학교 저학년 학생 정도로 취급하고 있는 것 같아 민망하다. 우리 교회에서는 주보를 통해서나 구두로나 그런 광고를 해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지난주에 그런 광고를 하고 말았다. 예배시간 지키는 것은 별 문제 없으니 말할 필요 없었지만, 주일성수 문제는 한번 쯤 강조할 필요가 있겠다 싶었다.

금기와 강제가 전혀 없는 교회이니 교우들은 그 자유로운 신앙기풍을 만끽하고 있다. 율법주의적 의미에서 주일성수를 강조하지도 않으니 각자 사정이 있을 경우 주일에 출석하지 못하는 경우도 충분히 서로에게 양해된다. 빡빡하게 짜여 있는 일상 가운데서 어쩌다 주일에 가족관계 일이나 그 밖의 일로 출타하는 것을 나무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 사정은 존중하고 양해할 수 있는 아량이 우리 교회에서는 통용된다.

그런데 가끔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빈 자리가 많아 찬 바람이 휑하니 이는 것 같은 느낌을 받을 때다. 교회의 본질은 그 외적 규모에 있지 않다고 믿고, 또 각자의 사정들을 충분히 양해할 만하다고 생각해도 그럴 때면 당혹하지 않을 수 없다. 더더욱 당혹스러울 때가 있다. 하필 그런 때 우리 교회를 처음 찾는 이들이 자리를 채우는 절묘한 사태가 종종 발생한다. 우리 교회를 처음 찾는 이들은 대개 상당한 사전 정보를 갖고 오는데, 막상 함께 하면서 당황하는 기색을 비치는 경우가 있다. 모든 것이 낯선 상황에서 그에 적응하기 위해서는 은연중 자신이 스며들기를 기대할 것이다. 그러나 갑작스레 자신이 확 노출되고 있다는 느낌을 받게 되면 당황하는 게 당연하다. 때문에, 끊임없이 우리 교회를 새로 찾는 이들이 있지만 고스란히 다 정착하지는 못한다. 그럴 때마다, 그 순간 겉으로 드러난 게 우리 교회의 진면목은 아니라고 자조하면서도 몹시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그런데 어쩌겠는가? 낯선 이에게 첫인상을 구겨버렸으니.

그래서 이제껏 감히 입 밖에 내지 않았던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더운 여름 빈 자리에서 찬 바람이 이는 건 괜찮았습니다. 그러나 서늘한 바람이 불기 시작하는 계절에 교회당 안에서마저 찬 바람이 일지 않도록 노력합시다. 이 공동체를 사랑한다면...’ 그런 취지로 광고를 하고 말았다.

목회자가 조바심을 내는 건 위험신호일까? 그간 6년 남짓 큰 어려움 없이 교우들과 함께 해온 시간이 행복했다. 작지만 결코 작지 않은 교회로서 몫을 다하기 위해 다들 헌신하고 있다. 이제 교회가 탄탄하게 지역사회에 자리를 잡을 수 있다면 더 없이 좋겠다. 이거 교우들에게 내밀하게 해야 할 소리를 공공연한 지면에 털어놓자니 참 민망하기 그지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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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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