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목사 ‘하산’ 준비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4-22 17:03
조회
296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8번째 원고입니다(060422).


목사 ‘하산’ 준비


몇 년 전부터 우리 교회에서는 평신도 설교를 실시해 왔다. 평신도의 주체성을 강조하는 교회답게 교회생활 문화와 예배 문화를 바꾸려는 노력의 일환이다. 처음 제안을 했을 때 다들 반색하며 환영을 했다. 100 퍼센트, 만장일치로! 그런데 고양이 목에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그 대목에 이르자 다들 난감해 했다. 환호와 난감, 그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밖에 없었다. 마음 같아서는 더 자주 했으면 좋으련만 일년에 두 번, 그러니까 부활주일과 추수감사주일에만 시행하기로 했다.

그렇게 일년에 두 번, 그 때마다 지명을 당한 사람은 그야말로 전전긍긍한다. 스스로 하겠다고 나서는 경우는 거의 없고, 이래저래 지명을 당해 맡게 되는데 그 순간부터 마치는 순간까지 온통 그 말씀나누기에 몰두한다. 그 탓일까? 평신도 설교는 거의 언제나 ‘대박’이다. 그야말로 응축된 삶의 이야기들이 쏟아져 나온다. 목사의 주석적 설교도 필요하겠지만, 평신도들 스스로의 삶의 이야기는 그야말로 진솔하고 누구에게나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맡은 사람은 맡은 사람대로 자신의 삶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니 좋고, 듣는 사람들은 자신들과 다르지 않은 교우의 진솔한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어 좋다. 물론 목사에게도 더 없이 좋은 기회이다.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형편을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어 좋고, 매주일 말씀을 준비해야 하는 목사의 고충을 이해받을 수 있는 기회이니 더더욱 좋다. 그야말로 ‘삼박자 축복’이 따로 없다.

이번 부활주일에도 두 교우가 말씀나누기를 맡았다. 허, 그런데 이제 목사가 ‘하산’을 해도 되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지금까지 그 누구의 이야기도 다 감동을 자아냈지만, 이번에 보니 이제 우리 교회 평신도 설교가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스스로의 삶의 이야기로 시작하는 평신도 설교의 미덕을 고스란히 갖춘 데다가, 그 삶을 성서적 통찰과 연결시키는 경지에까지 이르렀다.

지금까지는 사실 성서본문을 위주로 하는 목사의 짧은 말씀나누기에 이어 평신도의 말씀나누기를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이제 목사의 말씀나누기가 빠져도 손색없으리만큼 평신도 설교가 자리를 잡은 것 같다. 마침 올해는 안식년으로 몇 주간 자리를 비울 참이다. 그렇게 자리를 비워도 되겠다는 안도감이 들었다. 그렇게 믿고 맡기면 되는 것을! 함께 하는 교우들에게 그저 고마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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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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