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떡갈나무 꽃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5-07 21:12
조회
3276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9번째 원고입니다(060507).


떡갈나무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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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런 흙바람에

눈을 다쳐

한쪽을 가리고

산에 올랐습니다


두 눈으론

안보이던 꽃이 보입니다


떡갈나무에 꽃이 피어 있습니다


삼천리 어느 곳이든

해마다 피어나는 꽃을

사십 몇 년만에

한쪽 눈을 가리고서야

떡갈나무 꽃이 보입니다


수줍은 듯

나뭇잎 아래로

무리 지어 피어있습니다


소리 없는 씨알들의 무더기 아우성이며

죽임에서 일어서는 깃발입니다




고마운 흙바람이여


연초록이

왜 아름다운 빛깔인지

당신은 소리 없이

깨우쳐 주셨습니다    - 최광식, <산을 오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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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집안과 주변에 핀 꽃들을 수 없이 찍어 두고 있지만, 떡갈나무 꽃을 사진 한 폭으로 담아둘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다.

재미삼아 찍은 꽃들을 드낙거리는 카페에 올리자니 어떤 분의 짤막한 감상기가 인상적이다. 수줍은 듯 잎사귀 아래 숨어 피는 둥글레 꽃, 그리고 그 겸손한 모양을 한 떡갈나무 꽃, 은행나무 꽃이 아름답단다. 가녀리게 굽은 허리 잎사귀 아래 둥글둥글 맺히는 둥글레 꽃이야 언제나 내 눈길을 끄는 꽃이었지만, 화려한 모양새와는 전혀 상관없이 축 늘어진 떡갈나무 꽃을 꽃이라 생각했던가? 꽃인지 몰랐던 것은 아니지만 내 눈에 그것은 심미적 음미의 대상이 되지 못했었다. 한데 그 감상기를 보자니 떡갈나무 꽃이 다시 보이지 않은가! 그래 금방 떡갈나무 꽃을 찍어 올렸더니 그분은 이렇게 멋진 글로 응답해주었다.

아하, 어차피 아름답고 추한 것은 심상이 아닌가! 두 눈 똑바로 뜨고 모든 것을 다 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내 착각이었다. 자기를 뽐내듯 화사하게 핀 꽃들에만 가 있는 눈길은 사시나 다름없었다. 내가 미처 눈길을 주지 못했던 꽃들을 새삼 발견하며, 내가 미처 눈길을 주지 못한 삶의 구석은 또 없을까 생각한다. 수많은 꽃들이 만발하는 이 계절의 큰 깨달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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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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