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우리 아빠는 목사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6-03-07 13:14
조회
3299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35번째 원고입니다(060307).


우리 아빠는 목사


"너도 우아목이야? 뜻밖이다." 큰딸 시내가 담양에 있는 한빛고등학교에 입학한지 며칠 지난 후 전화로 조잘조잘 전해온 이야기 가운데 하나다. '우리 아빠는 목사'를 줄여 그렇게 '우ㆍ아ㆍ목'이라고 부른다는데, 목회자 자녀들이 많은 탓인지 그 이름이 그렇게 별칭으로 통용된다고 한다. "거참, 우아하구나! 아무튼 잘 지내라" 하고 전화를 끝냈는데, 피식 웃음이 난다. 녀석, 도대체 소행이 어쨌길래 다른 아이들에게 '우아목'이라는 사실이 의외로 받아들여졌을까나?

지난 여름 진학상담을 하고 마음을 굳힌 후 입학 지원을 하고 최종 합격 통보를 받기까지 조마조마한 시간을 보냈었다. "꼭 가야 하는데, 떨어지면 어떻게 하지? 그건 생각하지 말자." 당사자나 부모의 입장 똑같이 그런 심정이었는데, 다행히도 합격하였고 가슴 뿌듯하게 입학을 했다. 하지만 때아닌 봄 서설이 내리던 날 먼 길을 달려가 입학식을 마치고 녀석을 기숙사에 두고 돌아오는데 어찌나 마음이 짠하던지? 눈물이 그렁그렁할 판인데, 녀석도 엄마도 아빠도 다들 태연한 척 손을 흔들고 돌아섰다. 정말 서로 원하는 선택이었지만, 그 어린 나이에 일찌감치 부모 품을 떠나고 떠나보내는 것은 적어도 그 순간만큼은 피차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

그러나 사실 그 절차는 기필코 그 학교를 선택해야만 했던 이유 가운데 하나이기도 했다. 일찌감치 부모 품을 떠나 스스로 생활을 꾸려나가는 지혜를 터득하고, 그러나 동시에 동료들과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방법 또한 체득할 수 있는 길이니 정말 바라던 바였다. 그래도 녀석 한 이틀은 집 생각만 나더라는데, 어느 순간 "바로 이 산인가벼!" 하는 느낌이 확 들었던지 집에서처럼 편안하게 소행을 하기 시작한 모양이다. 학급 도우미를 구하는 담임선생님의 요청에도 자청해 나서고, 장기자랑 시간에는 <왕의 남자>에 나오는 경극 배우 흉내로 주목을 끌어 이어지는 요청에 두어 번 더 '공연'을 해야 했단다. 평소 집에서 하던 소행보다 한 술 더 뜬 것 같은데, 아마도 그런 끝에 '우아목'이라는 사실이 밝혀져 다들 뜻밖이라 한 모양이다.

틀에 박힌 목사상을 고집하지 않으니 그 딸이 목사 자식처럼 비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당연할 터이다. 판에 박힌 교복도 입지 않고, 화려하게 머리에 물들이고 파마를 하고 와도 장미꽃 한 송이로 반겨주고, 오리엔테이션의 일부로 주변의 들판과 산을 나돌아다니는 학교에서 그 따위 고정관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 더더욱 깊이 체감해 나가기를 바란다. 그 고정관념을 버렸을 때 세상이 얼마다 더 아름답고 생동감에 넘치는지를 실감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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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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