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아, 미치겠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8-24 22:14
조회
3067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스물네 번째 원고입니다(050824).


아, 미치겠다!


동해바다를 보고 왔다. 농촌교회와 민중교회 목회자들의 수련회 강연차 설악동을 가고 오는 길에서였다. 동해바다를 처음 본 것도 아닌데 정말 '미칠 것 같은' 지경이었다. 아예 차를 세워놓고 바닷길을 걷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러나 차를 내버려둘 수는 없어, 몇 차례 차를 세우고 바다를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도저히 지나칠 수 없는 동해바다의 장관에 사로잡혀 가는 길에 두 번 차를 세워야 했고, 강연을 마치고 오는 길에 낙산사에 들러 아예 느긋하게 차를 세워두고 바다를 구경했다.

망망한 동해바다, 그 장쾌함에 새삼 감탄하였지만 그저 감탄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었다. 멍하니 바라보고 있자니 눈물이 날 것 같은 비감마저 느껴졌다. 그 장쾌하고 수려한 풍경을 보면서 어인 비감일까? 묘한 그리움 같은 것이 솟구치는 느낌이었다. 누군가 사무치게 그리우면 눈물이 흐르는 법이다. 마치 그런 느낌이었다. 동해바다를 한두 번 가 본 것은 아니니 그곳에 얽힌 어떤 추억이 없는 것은 아니다. 허나 그 추억 때문에 그런 것은 아니었다.

무장무애의 망망한 바다, 그러나 그와는 너무나도 대조적으로 꽉 짜여 있는 삶의 현실, 아마도 그 때문이었을 것이다. 일이 아니라 쉼, 부지런함이 아니라 게으름의 미덕을 강연의 주제로 삼고 떠난 길이었다. 그 때문에 아마도 그 대비를 더더욱 절감하게 되었을 것이다. 참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평소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는 사람이 쉼을 이야기해야 하고, 늘 부지런을 떠는 사람이 게으름의 미덕을 이야기해야 하다니! 그 강연을 준비하는 일은 나에게는 중노동이었고, 인생연륜으로나 실천으로나 다들 나보다 고수들인 청중 앞에서 이야기해야만 한다는 것도 큰 부담이었다. 먼길을 운전대 붙잡고 달려야 하는 일 또한 만만치 않았다. 그 와중에 마주친 망망한 바다는 예기치 못한 감동과 비감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이래저래 그저 미칠 것 같은 지경이었다.

한편으로는 그 아름다운 자연의 대장관 앞에서 감탄하고 기쁨을 맛보지만, 그 기쁨을 맛보는 순간 어떤 비감을 동시에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들의 삶의 현실인 듯하다. 그래서 지금 매인 삶과는 다른 삶에 대한 그리움이 그 망망한 바다를 보면서 솟구쳐 올랐던 것이다. 덕분에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강연을 준비해야 할 때보다 더 절실한 심정으로 우리가 바라는 삶에 대한 그리움을 느꼈다. 그리고 정말 '그리움'의 의미를 새삼 느꼈다. 그것은 그 어떤 지적 노력보다도 우리의 삶을 아름답게 만드는 마음의 밑바탕이 된다는 것과 함께 말이다. 그리움은 우리를 아프게 하기도 하지만 그 아픔 때문에 우리 삶은 더 아름다워질 수 있다.

다시 가도 그 느낌, 그 깨달음을 불러일으킨 그 미칠 것 같은 심경을 또 맛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어느 순간 하던 일을 멈추고 또 그 길을 나서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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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http://www.salri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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