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신랑으로 착각할까 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49
조회
3315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17번째 원고입니다(050414)


신랑으로 착각할까 봐...


"신랑으로 착각할까 봐 주례를 사양할까 했습니다." 지난 3월 처음 맡은 결혼식 주례사의 첫마디였다. 폭소를 터뜨린 하객들은 "아닌 게 아니라 주례가 젊긴 젊구만!" 하고 잠시 수군댔던 모양이다.

목사로서 감당해야 할 여러 의례를 다 해봤지만, 그 동안 결혼식 주례만큼은 맡아보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전도사 시절 교회 청년이기도 하고 또 대학 후배이기도 한 임 군이 뒤늦은 결혼식의 주례를 요청해 왔다. "신랑과 혼동할 텐데 그래도 되겠느냐?" "존경하는 선배님이고 목사님인데 영광이지요." 낯뜨겁다 이거! 하여간 그래서 주례를 맡아 그 첫 번째 주례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 첫 주례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도 않았는데 생면부지의 한 젊은이로부터 또 주례 요청이 왔다. 허, 주례 요청 쇄도일세! 지역에서 노동운동을 하는 젊은이인데, 몇 단계를 거치고 거쳐 나를 알게 되어 요청하는 것이라 했다. 내가 이제 더 이상 '젊은이'로만 불릴 수 없는 처지라는 것을 확인하게 된 터에, 그 요청을 거절할 리 없었다. 더욱이 마음과 뜻이 통하는 분이 주례를 맡아 주기를 기대한 젊은이한테 낙점을 받은 셈이니 영광이었다. 그 두 번째 주례는 떨렸던 첫 번째와는 달리 비교적 뻔뻔하고 노련하게 감당했다.

딱 40대 중반의 나이, 예전 같으면 제법 지긋하다는 소리를 들을 만도 하지만 요새는 전혀 그렇지 않다. 노령사회로 접어든 한국 사회에서 이제는 40대까지도 청년층으로 간주해야 한다는 사회학자의 주장도 있다. 50이나 넘겨야 겨우 장년으로 대접받을 수 있는 상황이다. 객관적으로 봐도 그러한데 주관적인 의식상으로는 더더욱 젊다. 그건 나의 착각일까? 착각이라 해도 상관없다. 나는 여전히 젊은이라는 의식이 강하다. 그러니 주례를 요청 받았을 때 당혹스럽지 않았겠는가? 젊은이가 아니라고 공인받는 절차인 셈이데 그걸 인정해야 하다니!

그러나 젊은이로서 내 의식을 훼손당하지 않으면서도 주례를 감당할 수 있는 것은 순전히 목사라는 직분 때문이다. 어떤 면에서 목사는 인생연륜이나 경험에 상관없이 자기 한계를 뛰어넘어 맡겨진 일을 감당해야 하는 직분이다. 연륜이나 경험, 또는 지식 등을 근거로 한다면 수많은 청중들 앞에서 감히 자신 있게 설교할 수 있는 목사가 얼마나 될까? 목사라는 직분은 그 한계를 뛰어넘어 서게 만든다. 때로는 굴레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다른 굴레를 뛰어넘어 서게도 한다. 굴레라면 벗어 던지고 싶지만, 그 굴레를 뛰어넘게 하는 것이라면 그 몫을 즐기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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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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