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한 해를 시작하면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34
조회
3715
* <미래를 여는 아이들> 2005년 1월 소식지 칼럼입니다(041231).


한 해를 시작하면서...


최형묵 (공동대표 / 천안살림교회 목사)


벌써 또 새해가? 어느 순간부터 새해를 맞이하는 특별한 감흥이 사라진 것 같다.

어린 시절 새해를 맞이하는 감격은 유달랐다. 떡국을 한 그릇 더 먹으면 한 살 더 먹는다는 어른들의 농담마저도 진담으로 받아들였을 정도이니 새해를 맞이함으로 한 살을 더 먹게 된 사실을 확인하는 것은 기쁜 일이었다. 학생 시절 새해를 맞이할 때면 각오를 새롭게 다졌다. 한 학년 진급과 더불어 마음속에 간직한 꿈이 한 발자욱 더 현실과 가까워져오고 있다는 느낌 속에서 새로운 각오를 다졌던 것이다. 아마도 가장 간절히 새해를 기다렸던 시절은 군복무 시절이었을 것이다. 새해가 되면 군복을 벗는다는 그 기대감은 실로 짜릿한 것이었다.

그런데 살아온 날보다 살아갈 날이 더 짧아졌다고 느끼는 시점부터였을까? 새해를 맞이하면서 맛보는 그런 감동은 사라졌다. 새로운 기대감보다는 그저 여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더 커진 듯하다. 꿈이 사라진 탓이 아니다. 기계적으로 순환하는 시간의 의미보다는 무한히 움직이는 시간 속에서 내가 해야 할 바의 의미를 더 중하게 여기게 된 탓이다. 세파에 흔들리기보다는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그 뜻이 변함없이 지켜지기를 바라는 기대가 더 커진 것이다. 그러니, 솔직히 말하건대 "한 해를 시작하며 소감 한 말씀"이라는 청탁은 나에게는 난감한 일이다.

그러나 세상 돌아가는 일이 내 한결같은 마음으로만 좌우되는 것은 아니다. 어쩔 수 없이 매월, 매년과 같은 주기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 주기에 따라 공적으로 사적으로 치러야 할 일들이 많다. 공적으로 치러야 할 일을 열거하자면 한이 없다. 아무리 여전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산다지만 그래도 개인적으로 치러야 할 일들도 적지 않다.

그러고 보니 나에게는 매번 새해를 맞이할 때마다 치르는 중요한 일이 한 가지 있다. 수첩정리다. 내가 수첩을 정리하는 방식은 컴퓨터에 입력해놓은 지인들의 연락처를 갱신해 출력한 것을 새해 수첩에 붙이는 방식이다. 매번 새롭게 기록할 수 없어 그런 방식을 취한지 한 십 년 되는 모양이다. 그런데 가만 보면 이 일이 그간의 인간관계의 결산에 해당한다. 일년 동안 수없이 만난 사람들이 건네준 명함과 수첩의 메모사항을 기존의 연락처와 대조하며 수정하거나 새로 기입해 넣는다. 물론 당사자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기존 연락처에서 빼버리는 경우도 있고, 받은 명함이라고 해서 그것을 다 기입해 넣지는 않는다. 앞으로 소식을 주고받을 일이 있는 사람의 연락처는 꼭 챙기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는 과감하게 삭제하거나 제쳐둔다. 엊그저께 만났어도 새해 수첩에 등재되지 않는 경우도 있고, 거의 연락을 주고받지 않았어도 오랫동안 등재되어 있는 경우도 있다.

역지사지(易地思之), 그 일을 하면서 문득 드는 생각이다. 거꾸로 나는 그 어떤 사람에게 어떻게 기억될까? 알 수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기대감은 뻔하다. 내가 만나는 많은 사람들에게 필요한 존재로 기억되고 싶은 마음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항상 기억되고 필요한 존재로 인식되는 것, 얼마나 기쁜 일인가!

결국 새해 각오를 한 가지 하고 만 셈이다. 내가 그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로 기억되는 삶을 살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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