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범람하는 영성의 시대에...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35
조회
3477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열한 번째입니다.(050106)


범람하는 영성의 시대에...


"중세 유대교", 미국의 대학에서 이런 제목으로 강좌를 개설하면 파리가 날린다고 한다. 그런데 똑같은 내용을 "유대교의 영성"으로 다시 포장하면 수강 대기자 명단이 생긴단다. 이런 현실을 두고 진지한 교수들은 쓴웃음을 지을 수밖에 없다는데, 오늘 범람하는 영성의 시대 허실을 꼬집는 일화다. 어느 순간부터 영성에 대해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출판물도 상당해진 것 같고, 영성 함양을 위한다는 프로그램도 많아졌고, 목회 현장에서도 그에 대한 요구와 기대가 높아졌다. 신앙을 가진 이로서 높은 영성에 이르고자 하는 것은 지당한 요구다. 그러니 뜨거워진 영성에 대한 갈망 그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하건대, 나는 그 말을 접할 때마다 마음이 어째 그렇게 허전한지 모르겠다. 그 말을 듣는 순간 거의 동시적으로 '그거 아닌데!' 하는 생각부터 버쩍 든다. '웰빙'의 열풍이 그렇듯이 '영성' 역시 시대적 맥락을 갖고 있다는 게 내가 품고 있는 의혹이다. 신비한 영성에 대한 관심이 후기 자본주의의 하위 이데올로기로서 역할을 한다는 어떤 학자의 현학적인 주장을 굳이 근거로 들지 않더라도, 범람하는 영성에 관한 담론은 영 석연치 않다.

그렇다고 내가 영성의 가치 그 자체를 부인하는 것은 아니다. 나름대로 그에 관한 입장을 마음속에 늘 품고 있다. 영성은 말로 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모든 신앙의 가치들이 그렇겠지만, 입에서 입으로 많이 회자되는 것일수록 다시 입으로 되뇌기보다는 마음속으로 깊이 새겨야 한다. 마음속으로 새긴다는 것, 그것은 곧 말로써가 아니라 삶으로 표현해야 한다는 뜻이다.

나는 대학시절 교회 목사님에 대한 깊은 인상을 한 가지 가지고 있다. 종교간의 대화와 영성의 세계에 대한 많은 저작을 갖고 있고, 지금도 현직 교수로 계셔 대개 금방 알 만한 분이다. 그분이 개척교회를 하실 때 나는 주일학교 교사로서 주일 아침이면 일찍 교회에 나가야 했다. 종종 지각을 해서 탈이었지만, 지각을 하지 않을 때면 꼭 목격하는 장면이 목사님께서 빗자루와 걸레를 들고 교회당을 청소하는 모습이었다. 그 때의 신선한 충격은 지금까지도 나의 뇌리에 깊이 새겨져 있다.

꼭 그 때 그분의 모습을 재현하고 싶어서는 아니었다. 내가 교회 개척을 하고서 한동안 교회당 청소는 어쩔 수 없는 내 몫이었다. 교회당에 가장 먼저 나가 빗자루질을 하고 걸레질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은 거드는 교우들이 있어 내 '고유한' 몫은 아니지만, 그것이 '어쩔 수 없는' 내 몫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사실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였고, 따라서 '기꺼운' 내 몫이었다. 주일 아침에 정성으로 예배드리기 위해 오는 이들에게 산뜻하게 교회당을 청소해놓고 기다리는 일은 대단한 일은 아니지만 큰 기쁨을 주는 일이다. 그것은 또한 단순히 교회당을 쓸고 닦는 일이 아니라 내 마음을 쓸고 닦는 일이다.

영성이 대수로운 것일까? 일상적 생활 가운데서 스스로에게, 그리고 그 누군가에게 기쁨이 되는 일을 기꺼이 할 수 있다면 그에 한 발자욱 다가서 있는 것 아닐까? 프로그램화되어 있는 영성을 추구하느라 분주히 움직일 일이 아니다. 지금 내가 있는 자리에서 아무것도 아닌 듯하지만 꼭 필요한 일을 감당하는 삶의 태도, 나는 그것이 진정으로 영성에 이르는 길이라 믿고 있다.
7.jpg

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전체 0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