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귀여운 '악당들'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37
조회
3558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열세번째 편입니다(050203).


귀여운 '악당들'


'이 악당들!' 작은 교회당에서 복작대며 소란을 피우는 아이들을 나는 항상 그렇게 부른다. 이 악당들이 나를 부르는 호칭은 다양하다. 철이 든 녀석들은 '목사님' 하고 정중하게 부르지만, 꼬맹이들은 '아저씨'라 하기도 하고 '삼촌'이라 하기도 한다. 때로는 '야!' 하고 막가는 놈들도 있다. 다 내가 자초한 일이니 그렇게 무례하게 굴어도 별 도리가 없다. 이놈들이 교회당에 들어서면 볼때기 잡아당기기로 인사하고, 무등도 태워주고, 비행기도 태워주고, 똥침을 날리기도 한다. 때로는 무시무시한 '핵융합반응실험'까지 같이한다. 아, 이런! 이건 천기누설이다. 그냥 그런 게 있다는 것만 알고, 더 이상 알려고 하지 마시라. 좌우간 그렇게 같이 까불다 보니 악당들은 막무가내로 엉겨붙는다.

새해 첫 주부터 이 녀석들만의 예배가 따로 생겼다. 그간 어린이예배가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처음 어린이예배를 드렸던 아이들이 중고등학생이 되어 대예배에 참석하면서 간신히 명맥만 유지하고 있었다. 한동안 우리집 둘째와 단 둘이 어린이예배를 드리기도 했다. 이 녀석마저 올해부터는 중학생이 되어 어린이예배가 끈길 지경이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그 동안 엄마아빠 품에서 삐약삐약 하던 녀석들이 장성해 제법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어린이축에도 못 끼고 그저 엄마아빠한테 붙은 '껌' 같은 녀석들인 줄로만 알았는데, 보아하니 그게 아니었다. 그래서 교회학교 체제를 재정비해 이 새로운 세대들로 어린이예배를 다시 본격적으로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까불고 소란만 피우던 녀석들이 자신들만의 예배를 드리니 표정들이 아주 진지하다. 동전들을 정성스럽게 봉투에 담아 지진해일피해지역을 돕기 위한 헌금을 하는가 하면 요절말씀도 외운다. 아마도 어른들이 자신들을 이제 특별히 대접해주기 시작했다고 느끼고 있는 듯한 표정들이다.

물론 그렇다고 까불던 악당들의 버릇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거룩하게 축도를 하는 목사님 흉내를 내며 키득키득 하는 녀석들도 있다. 막내둥이 혜민이는 대예배가 시작되었는데도 목사님 꽁무니를 좇아와 강단 주변을 맴돌며 추파를 던진다. 거기서 근엄한 표정으로 소리지르지 말고 자기랑 놀아달라는 심산이다. 그 간지러운 추파 앞에 목사의 근엄한 설교는 녹아 내려버리고 교회당 안은 봄날 아지랑이 같은 웃음꽃으로 순간 가득 찬다.

그 꼬맹이들이 하나님의 오묘한 섭리와 심오한 신앙의 세계를 어찌 알까? 요절말씀 하나 더 외운다고 그것이 곧바로 신앙의 길로 직결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교회에서의 즐거웠던 기억, 그것이 장차 스스로 물음을 던지게 되었을 때 신앙의 길잡이 몫을 할 것이다. 우리의 악당들에게 그 아름답고 소중한 추억을 듬뿍 줄 수 있는 교회가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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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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