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15
조회
4609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일곱 번째입니다.(041002)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나는 식도락을 꽤 즐기는 편이다. 그렇게 즐긴다는 게 호사스러운 진수성찬을 즐긴다는 뜻은 아니다. 내 말을 그렇게 오해할 사람도 거의 없을 듯 싶은데 또 굳이 해명해야 할 까닭은 뭐람? 괜히 식탐이나 하는 사람으로 비칠까봐 미리 쐐기를 박는 셈이다. 사실 내가 즐기는 식도락이란 '어디 가면 뭘 먹는다' 하는 원칙을 나름대로 고수하는 것을 말한다. 지금 사는 동네에 손님이 찾아오면 아우내 순대국밥으로 대접하고, 월악산 괴산 일대를 가면 올갱이국을 먹고, 고향 해남을 찾으면 짱뚱이탕 아니면 세발낙지를 꼭 먹어야 한다. 전주 하면 흔히 비빔밥을 연상하지만 그보다는 콩나물국밥이 떠오르고 그에 곁들인 모주 한잔 생각이 절로 난다. 저마다 독특한 맛이 있어 좋다.

늘어놓자면 한이 없을 텐데 그렇게 먹어보는 음식 가운데 가장 맛있는 것 몇 가지를 꼽으라면 한 가지 꼭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있다. 바로 '기차간에서 먹는 삶은 달걀'이다. 내 추억이야 주로 호남선에 얽혀 있지만, 어느 선이든 상관없다. 경부선 기차간이든 호남선 기차간이든 그 기차 안에서 먹는 삶은 달걀은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 가운데 하나인 게 틀림없다. 별 싱거운 소리 다한다 할지 모르겠지만, 미심쩍거든 한번 확인해보시라. 요즘처럼 자동차가 많지 않아 주로 기차를 타고 여행을 했던 시절의 추억을 간직한 사람이라면 아마도 거의 대부분 동의할 것이다. 요새는 삶은 달걀 대신 구운 달걀로 바뀌었지만, 요즘도 가끔 기차간에서 사 먹으면 역시 기대에 어긋나지 않는다.

그게 어째 맛이 있을까? 어머니의 정성이 듬뿍 담긴 탓일까? 어머니께서 싸 준 것만이 아니라 기차 안에서 사 먹는 것도 맛있으니 그건 또 무슨 사연일까? 가격 대비 포만감이 적절한 수준에서 맞아 떨어져 그로 인한 만족감 때문일까? 따지고 보면 별 대단한 이유가 없는 것 같은데 그게 그렇게 맛있다. 사실 지역의 고유한 음식이라는 것도 그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재료와 양념 그 자체를 따지고 보면 그다지 특별할 게 없을 것 같은데도, 착각이 아니라 실제로 특별한 맛을 느낀다. 각 지역 음식마다 그것을 만드는 고유한 비법이 있기는 할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솜씨의 비법도 비법이겠지만, 아마도 더 중요한 것은 특정한 환경과 특정한 소재의 절묘한 결합 그 자체 아닐까? 여행이라는 특별한 상황이, 어떤 지역만의 특별한 정취가 음식과 어울려 특별한 맛을 낸다는 게 내 믿음이다. '궁합'이라 할 수도 있고, '조화'라 할 수도 있는 그 절묘한 결합을 말로 다 설명해 버리면 재미없어진다. 감으로, 체험으로 그 맛을 보아야 정말 묘미를 안다. 그 맛은 그 어떤 것과 비교대상이 되어 뛰어난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 특별하다.

우리의 신앙생활과 교회생활도 그 절묘한 결합으로 오묘한 맛을 내는 것과 같아야 하지 않을까? 획일화된 맛으로 우열을 가르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독특한 최고의 맛을 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어찌 보면 그리스도인이라 해서 별로 다를 게 없어 보인다. 교회들도 천편일률적으로 보인다. 그런 가운데서 그 어떤 요인이 결정적으로 달라 보이게 할 수도 있다. 교회도 개인도 저마다 그 특별한 것을 누릴 수 있다면 정말 사는 맛이 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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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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