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한 시론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17
조회
4017
한국민중신학회 세미나 발제

2004년 10월 9일(토) 오후 3시

성공회대학교 새천년기념관 세미나실



새로운 민중신학에 대한 시론


최형묵


1.


참 오랜만에 문밖을 나서는 기분이다. 한동안 '교회 안'에 칩거해 있는 기분이었는데 오랜만에 '교회 밖'으로 나선 기분이다. 최근 한국교회 위기론이 무성해지면서 온통 그 과제에만 몰두하다시피 했다. 말을 꺼낸 책임이 있으니 뒷감당을 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다. 여전히 그 와중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차인데 민중신학의 새로운 과제를 찾으라는 주문을 받게 되었으니 비록 반강제적일지언정 그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는 기회를 누리게 된 셈이다.

물론 최근 한국 사회에서 강력하게 제기되는 교회의 위기론이 민중신학의 과제와 결코 동떨어진 것은 아니다. 그것은 애초 민중신학이 출발점 가운데 하나로 설정했던 탈교회적 과제를 새삼 확인해주는 것이다. 더욱이 민중신학이 애초 문제로 삼았던 교회의 문제가 과거에는 잠복적 형태를 띤 반면 오늘날에는 우리 사회의 정치적 이념적 지형의 변화와 함께 공공연하게 돌출되는 형태를 띠고 있다는 점에서 오늘 한국교회 위기론은 민중신학에 더욱더 무거운 과제를 부여하고 있다.

어떤 시대이든 교회의 문제는 당대의 사회적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교회 안'의 문제가 말 그대로 교회 '안'의 문제일 수만은 없다. 그러나 안과 밖의 일정한 경계가 있는 것이 사실이고, 따라서 그 문제를 인식하고 다루는 방식에서 일정 정도 다른 차원이 있을 수 있다. 내가 그간 교회 안의 문제에만 몰두했다는 것은 그와 같은 경계와 차이를 전제한 상황에서 교회 밖의 문제보다는 교회 안의 문제를 몰두했다는 것을 말하며, 그로부터 벗어나게 되었다는 것은 교회 밖의 차원에서 교회를 바라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는 것을 말한다.

사실 민중신학의 탈교회적 지향성은 민중사건의 현장에서 교회의 문제점을 바라보게 된 데서 비롯된 것이었다. 바꿔 말하면 신학의 '시대인식'이 기존의 기독교 전통을 다시 바라보게 만들었고 그것이 민중신학의 자각적인 특성을 이뤘던 것이다. 그리고 그 시대인식의 차이는 계속되는 민중신학의 새로운 경향들을 형성하였다. 우리가 흔히 민중신학을 말할 때 사용하는 '세대론'은 그와 같은 의미를 함축한 것이다. 오늘 '새로운 민중신학'이라는 표제를 별다른 이의 없이 사용하는 것도 나로서는 그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한다. 물론 그 새로움은 다양한 측면에서 규정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내가 견지해왔던 민중신학에 대한 태도에서는 그와 같이 이해하는 것이다.

나는 오늘 주어진 과제를 그와 같은 차원에서 접근하려고 한다. 신학이 오늘 이 시대를 인식하는 데 쟁점이 되는 것들이 무엇인지 검토함으로써 새롭게 펼쳐져야 할 민중신학의 가능성을 탐색하려는 것이다.


2.


새로운 민중신학이라는 과제가 주어진 만큼 무엇이 어떤 점에서 새로운 것인지를 밝히기 위한 접근방식부터 분명히 해야겠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대로, 나는 유용한 접근방식의 하나로 '민중신학 세대론'을 따른다. 오해를 불식시키기 위해 분명히 한다면, 내가 사용하는 민중신학 세대론은 민중신학의 모든 경향을 포괄하는 접근방식은 아니다. 그것은 민중신학 가운데서 어떤 경향의 연속성과 차별성을 판별해주는 하나의 도구일 뿐이다. 엄밀히 말해 신학자들이 아닌 신학의 경향을 분류하는 방식으로서 민중신학 세대론은 특별히 민중신학 안에서 탈교회적 반신학의 계보를 읽어내는 데 유용한 방편이다. 나로서는 여러 차례 민중신학의 세대별 차이를 설명한 바 있지만, 새삼 새로운 민중신학의 과제를 모색하는 터라 다시 그 논지를 집약하고자 한다.  

제1세대 민중신학은, 1960ㆍ70년대 돌진적 근대화 과정에서 소외된 민중의 발견에서 촉발되었다. 1970년 전태일 사건의 충격과 더불어 기독교 신학은 자신의 시좌를 새롭게 설정한다. '민중사건'을 증언하려는 신학은 한국의 근대화에 대한 근본적 성찰과 더불어 그 사건을 증언하기에는 부적합한 이전의 기독교와 신학 전통에 대해 비판적으로 성찰하였다. 서구적 합리성에 기초한 지배적 담론에 대한 저항으로서 당시의 민중신학은 예언자적 통찰에 가까웠다. 그것은 민중신학자들 스스로의 표현처럼 '증언의 신학'이었으며 '반신학' '탈신학'이었다.

1980년 광주민중항쟁과 더불어 제2세대 민중신학이 전개된다. 1980년대는 한국적 근대화의 대안으로 반자본주의적 전략과, 미국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더불어 민족해방 전략이 전면에 부상하였고, 급진적인 학생운동의 폭발적 성장 및 노동자 계급운동의 형성과 더불어 대안적 이념으로서 맑스주의의 수용이 본격화되었다. 이 시기의 민중신학은 민중운동과의 연대를 중요한 과제로 설정하고 그 연대를 위한 대안적 이론 모색에 치중하였다. 정치경제학적 인식과 신학적 인식을 결합한 '물(物)의 신학'이 형성된 것은 그 결과였다. 맑스주의 정치경제학에 접근한 제2세대 민중신학은 제1세대 민중신학의 다양한 가능성을 협애화시킨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것은 당대의 시대인식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불가피한 결과였다.

현실 사회주의의 몰락과 지구화로 특징지워진 1990년대 이후 역사적 지평은 제3세대 민중신학을 태동시킨 배경이 된다. 국가 내지는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근대적 경계화가 해체되는 가운데 보다 다양하고 정교한 지배의 양식을 구현하고 있는 지구화의 현실은 새로운 해방 전략을 요구하고 있다. 제3세대 민중신학은 그러한 현실에 대응하여 정치경제학적 인식을 보완하는 인식 틀로 문화정치학적 인식을 수용한다. 아울러 거대담론과 미시담론의 통합을 추구하고 권력의 다양한 지배 양식에 주목하여 민중신학의 권력해체적 특성을 강조한다.

탈서구신학 탈교회 기획으로서 '반신학' 내지는 '탈신학'의 계보를 형성하고 있는 세대별 민중신학은 한국사회의 위기에 대한 개입 언어로서 신학의 성격을 분명히 하고 있다. 현재진행형으로서 민중신학은 태생적 성격상 끊임없이 시대적 과제 앞에 자신의 입장을 밝혀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시대의 위기에 개입하여 그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는 것이 민중신학의 또 다른 어떤 세대를 형성할지는 모른다. 정말 '새로운' 것이 될지 또는 그 어떤 이름으로 명명될지는 모른다. 중요한 점은 얼마만큼 진지하게 시대의 위기에 개입하고 그것을 신학적으로 성찰하느냐 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이전의 민중신학과 어떤 변별성을 지니게 된다면 그야말로 새로운 이름을 얻게 될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주어진 과제로서 '새로운 민중신학'이라는 말에 매이고 싶지는 않다. 또 지금 시도하는 신학적 성찰이 지금까지의 세대별 분류 가운데 어디쯤 위치하게 될까 하는 것을 의도적으로 유념하지는 않고 싶다. 다만 지금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신학적 성찰을 시도하고자 할 따름이다. 그것이 지금까지 민중신학의 한 경향을 분별해내는 세대별 분류방식이 시사하듯 일정한 단절을 동반하는 연속성 속에서 어떤 의의를 지닌다면, 내가 이해하는 민중신학의 입장에 충실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3.  


이미 앞에서 세대별 민중신학의 특성을 살피는 가운데 언급했지만 1990년대 이후 민중신학이 그 인식지평으로 삼고 있는 시대상황은 민중신학의 태동기인 1970년대나 한국 민중운동의 급격한 성장기인 1980년대와는 다르게 전개되고 있다. 아마도 가장 두드러진 그 특징으로는 어떤 면으로 보나 세계적 상황이 한국적 상황에 매우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치는 현상일 것이다. 물론 세계적 상황과 일국적 상황이 긴밀하게 상관되는 현상은 이미 근대 자본주의 체제의 등장 그 자체로 전면화된 것이 사실이다. 그 점에서 그 현상이 새삼스러울 것이 없을 수도 있지만, 세기말을 지나 새로운 세기에 접어든 이 즈음의 현상은 확실히 다른 양상을 띠고 있다. 이른바 '지구화'나 '신자유주의적 세계화', 또는 최근의 '제국'으로 일컬어지는 현상은 오늘 우리가 경험하고 있는 시대적 상황이 이전에 경험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말해준다. 우리는 실제로 일상의 차원에서도 달라진 그 상황을 실감하고 있다. 예컨대, 이제 외국인 노동자는 우리에게 낯선 이방인이 아니라 일상적으로 대면하고 사는 이웃이 되고 있다. IMF 구제금융 사태로 세계적 금융자본의 위력이 우리의 사회적 관계 나아가 일상적인 가족관계까지도 어떻게 흐트러뜨릴 수 있는지도 실감하였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전쟁은 결코 그들만의 문제가 아니라 바로 우리의 문제가 되어 있다. 몇 가지 예에 지나지 않지만 이 사례들은 그 만큼 세계적 상황이 곧 우리의 상황이 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실제적 차원에서의 이와 같은 상황의 변화와 더불어 그에 대한 인식의 지평 또한 확연히 달라졌다. 이제 우리 사회에서 제기되는 여러 문제들에 대해 일국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판단하는 방식은 그 유효성을 의심받게 되었다. 시대적 현상을 진단하는 어떠한 이론에게나 마찬가지이겠지만 그와 같은 변화는 민중신학에 더더욱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민중을 번역하지 않고 '민중'(Minjung)이라 한 데서도 분명히 드러나는 것처럼 민중신학은 사실 한국적 특수성을 대단히 중요하게 강조해 왔다. 그 특수성에 대한 강조가 보편적인 의미 맥락과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을 일종의 전략으로 구사해 왔다. 그것은 서구신학이 보편적 신학임을 자임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에 대한 반명제로서 성격을 지님과 동시에 서구신학 역시 하나의 특수한 신학임을 드러내는 이중의 목적을 지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제1세대 민중신학에서는 말할 것 없거니와 제2세대 민중신학에서도 그러한 경향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제2세대 민중신학의 경우 정치경제학 비판 이론을 수용함으로써 보편적 민중현실에 접근하는 이론적 장치를 갖추었음에도, 1980년대 민중운동의 사회인식이 세계적 상관관계보다는 일국적 차원의 변혁에 치중하였던 한계 안에 있었다. 그러기에 오늘의 상황 변화가 그 시대적 한계의 극복을 요청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에 각별한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그것은 세계적 차원에서 보편적인 의미 연관을 갖고 있는 민중현실을 제대로 인식하기 위한 필요에서 요청되고 있는 과제이다.


민중신학의 새로운 시대인식을 문제시할 때 아마도 가장 먼저 거론할 수 있는 문제가 아마도 민족주의에 대한 인식의 문제일 것이다. '민중적 민족', '민족적 민중'이라는 민중신학의 전형적인 수사는 민족과 민중을 사실상 동일시하고 있다는 것을 말한다. 민족의 실체로서 민중을 의심 없이 전제하고, 민족 역시 '민중'이라는 말이 함축하는 바로 그런 의미에서 민족으로 거의 의심 없이 사용해왔다. 그러한 인식은 물론 앞에서 말한 한국적 특수성으로 정당화되어 왔다. 민중신학이 국가권력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혐오와 함께 철저히 저항적인 태도를 취한 데 반해 민족에 대한 이해에서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 지상 가치를 인정해온 것은 확실히 한국 현대사의 특수성에서 기인한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한국에서의 민족주의 형성은 일제의 식민통치 시기와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국가가 정당성을 지닐 수 없었던 상황에서 민족은 정당성 없는 국가(일제)에 대항하는 구심점으로서 거의 자명하게 정당성을 지녔던 것이다. 해방공간에서 민족과 민중은 다른 위상을 지닐 수 있는 여지(민족과 민중의 균열)가 있었지만 분단으로 말미암아 그 균열 가능성은 절묘하게 봉합되어 버리고 말았다. 식민통치 유산으로 분단이 초래되어 민족적 통합의 과제는 여전히 위력을 지니는 가치 이념으로 남게 되었다. 더욱이 해방 이후에도 여전히 외세의 영향력 아래 있는 현실은 민족주의를 의심 없는 가치로 받아들이게 만들었다. 민중적 정당성을 지니지 못하는 국가권력이 민족주의를 통치이데올로기화 하고 있는 상황에서도 민족주의 자체에 대한 반성의 여유는 생기지 않았다. "우리 역사에서 민족은 있었지만 민중은 없었다"는 안병무의 인식은 민중신학을 가능하게 한 중대한 인식의 전초였지만, 민족주의가 여전히 정당성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역사적 상황에서 민족과 민중의 균열가능성은 민중신학의 인식지평에서 봉쇄된 채로 남아 있었다. 바로 여기에서 '민중적 민족'과 '민족적 민중'이 등식화되는 모호한 인식이 자리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한국의 이른바 진보적 기독교에 지금도 그대로 존속되고 있다.

상황이 변화된 오늘날에도 민족주의가 진보적 혹은 해방적 가치로서 의의를 지닐 수 있는 현실적 여지는 여전히 남아 있다. 진보적 기독교 진영뿐만 아니라 민중운동, 심지어 노동운동 영역에서조차 여전히 민족주의가 위력을 발휘하고 있는 것은 그런 현실 때문이다. 예컨대 남북 분단의 상황이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최근에 사회과학자들 사이에서는 단일민족이라는 것을 근거로 '민족통일'을 숙원의 과제로 설정하는 것은 통일의 필연성을 이야기하는 근거로는 빈약하지 않느냐는 반성도 있지만, 외세에 의한 인위적인 분단을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우리 사회에서 '민족'의 의의를 쉽게 포기하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다. 또 한편으로는 오늘날 자본의 세계화 현실에서 국민국가 내지는 민족의 경계가 무의미해지고 있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자본이 자기를 실현해나가는 데 일정하게 국가간 지역간 차별적 위계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그것을 이용하고 있는 현실도 일말의 진보적 가치로서 '민족'의 의의를 기각시키지 못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흔히 초국적 자본으로 알려져 있는 것도 사실은 한두 개 이상의 국민국가적 기반을 지니고 있다. 세계 자유무역체제를 주창하면서도 심심지 않게 자신의 국내법으로 국제적 교역관계를 규율하려는 미국의 정책에서도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쿠르드와 체첸의 경우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오늘날 민족들의 다양한 존재방식과 저항운동들 또한 '민족'의 의의를 저버리지 못하게 한다.

저마다 역사적 경험이 다른 까닭에, 예컨대 서구 근대 민족형성 이론을 적용해 모든 경우의 민족주의에 동일한 평가를 내리는 일이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전히 특수한 상황을 진지하게 고려하는 신중한 태도가 필요할 것이고, 따라서 제한적일지언정 '민족'의 의의를 인정해야 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혈연 공동체로서 민족이 진실인지 의심의 여지가 있고, 또한 어떤 경우에 그것이 진실이라 하더라도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가치가 보편적 가치를 지닐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단일성의 논리는 필연적으로 또 다른 배제의 논리를 배태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한국의 역사적 경험은 그 민족주의를 재고하도록 요청하고 있다. 자본주의 세계의 위계질서 안에서 지금 한국은 이중적인 지위에 있다. 한편으로는 미국을 비롯한 외세의 영향력과 국부의 유출을 우려하지만, 한편으로는 아제국주의라는 평가마저 받고 있는 실정이다. 동남아 등지에 한국의 여러 기업들이 진출해 있을 뿐 아니라,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외국의 이주 노동자들이 대거 들어와 있는 실정이다. 이와 같은 실정은 한국사회 자체 안에서도 민족주의가 더 이상 보편적 공감을 얻기 어렵다는 것을 말해준다. 종종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대안을 모색하는 것과 민족주의적 지향이 혼동을 일으키지만, 국가간 지역간 위계화된 자본주의 질서에서 국민국가적 차원에서 변혁의 대안을 모색하는 것과 민족주의적 접근은 명백히 구별할 필요가 있다.  

민중신학은 바로 그런 현실을 유념함으로써 민족주의가 지닐 수 있는 퇴행성을 경계하고 세계적 지평에 걸맞는 인식을 갖출 필요가 있다. 그 점에서 민중신학 애초부터 '민중'에 그 시좌를 설정하고 있다는 것은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며, 그 때문에 변화된 상황에서도 여전히 민중신학적 인식은 커다란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이제 한국적 민중의 현실에서 세계적 민중의 현실로 폭을 넓혀 신학적 성찰을 심화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역으로 한국적 민중현실을 더욱 정확하게 인식하는 길이기도 하다.  


민중신학의 새로운 시대인식에서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이다. 민중신학은 '한국적 민주주의'(박정희)에 대항해 싸우는 과정에서 진정한 의미의 민중 주체의 민주주의에 대한 전망을 구체화해 왔다. 그것은 현실의 민중들의 요구에 귀를 기울인 결과였으며 동시에 그 민중이 '하느님의 계약 파트너'(서남동)라는 급진적 신학적 인식으로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 나는, 하느님 나라에 대한 전망에서 현실적 대안을 모색했던 민중신학의 성과를 주의 깊게 살펴본 적이 있다(참조. "민중신학에서의 이데올로기 문제"; "민중신학과 하나님 나라" 등). 현실적 대안과 관련한 신학적 인식의 특성은 현실적으로 유용한 대안의 타당성을 인정하면서도 끊임없이 그것을 상대화시킨다는 점에서 급진적이다. 민중의 역사주체성, 나아가 하느님의 계약 파트너로서 민중을 신뢰하는 민중신학은 그 점에서 매우 급진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그와 같이 급진적 입장에서 민중신학은 오늘 한국 민주주의에 대해 더 깊은 성찰을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민중신학에서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은 충분히 이뤄지고 있는 것 같지 않다. 그에 대한 성과들이 없지 않지만, 왠지 민중신학의 변방의 주제로 밀려나 있는 느낌이다. 신학이 현실의 제도적 차원의 문제에 접근하는 것에 대한 어려움이나 논란의 여지가 있는 탓이기도 하겠지만, 모종의 또 다른 이유가 있지 않을까 추측되기도 한다. 나의 추측으로 그것은 민족주의적 경향을 쉽게 극복하지 못하는 한국 기독교의 진보진영의 정서와 상당 부분 관련이 되어 있지 않나 생각된다. 내가 보기에 한국 기독교 진보 세력은 정치이념 차원에서 크게 보아 민족주의와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주요 기둥으로 삼아 왔다. 민중신학이 민주주의에 대한 급진적 인식에 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서적으로나 실천적으로나 기독교 진보 진영이 추구한 민주주의는 자유민주주의적 범위 안에서 벗어나 있지 않다. 그것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에서 구체적인 인적 관계와 무관하지 않다. 아마도 그러한 현실적 요인이 민중신학의 이론적 성찰에도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 단언 내리기 어렵다. 아직은 나의 추측에 불과하고 이에 관한 실사적 연구는 하나의 과제가 될 수 있지만,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오늘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과정은 그 추측이 근거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 과정을 민주주의가 성취된 것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교회의 공식적 선언문이나 여러 문건에서도 한국교회의 민주화 기여는 과거지사처럼 표현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오늘 현실은 민주주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하고 있다. 특별히 1987년 이후 한국의 민주주의는 상당한 발전을 한 것이 사실이다. 사람들은 소위 '문민정부'와 '국민의 정부' 그리고 오늘 '참여정부'에 이르기까지 더디지만 정상적인 궤도를 밟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난 봄 탄핵국면은 한국 민주주의 현실이 얼마나 위태로운 지경인지 보여주었다.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와 동일시될 수 없고 그 절차적 민주주의가 실질적 민주주의를 저절로 보장해주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었다. 오늘날 하나의 보편적인 민주정치 제도처럼 간주되는 대의 민주주의는 얼마든지 민의를 왜곡시킬 수 있다. 국민의 지지율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불합리한 대의제의 운용도 문제이지만, 그 지지율을 정확하게 반영하는 대의제라 하더라도 민의가 정확하게 수렴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오래 전부터 대의 민주제가 정착한 서구 사회에서 노동계급을 대표하는 정당들이 정권을 잡기도 하지만 그것이 현실의 사회적 계급관계를 얼마나 변화시키는지 냉정하게 평가할 일이다. 전문적 직업집단으로서 정치가를 필요로 하는 대의 민주제는 완전한 민주제와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오늘날 하나의 보편적 제도로서 자리잡은 대의 민주주의가 사실은 민주제가 아니라 귀족제의 한 변형이라는 비판도 있다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물론 그것 역시 역사적으로 발전한 형태이고 그 나름의 합리성을 지니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여전히 민의 총의를 구현할 수 없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면 보다 더 급진적인 대안을 찾는 것이 마땅하다. 오늘날 실질적 민주주의, 참여 민주주의, 직접 민주주의, 급진적 민주주의, 민중 민주주의 등 다양한 이름으로 현실에 존재하는 민주의의를 극복하려고 시도하는 것은 바로 그 현실의 민주주의가 지극히 상대적인 의의를 지닐 뿐이라는 것을 말한다. 현실 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는 길은 우선 현재 정치적 주체로 공인되고 있는 주체들의 명실상부한 주권의 평등을 실현하는 방향에서 찾아져야 한다.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공공 정치영역에서의 새로운 정치 주체를 인정함으로써 주권의 범위를 확대하는 일까지 포함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선거권의 연령을 낮추는 것은 물론, 이주 노동자들에게까지도 참정권을 허용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그렇게 되면 지금까지의 '국민' 개념 자체가 해체될 수 있고 새로운 정치적 주체가 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말하자면 추상적 의미의 '세계 시민'이 아니라 명실상부한 '세계 시민'이 등장할 수 있다. 이와 같은 전망이 현재 자본주의 세계 질서 안에서 가능한 일인지는 모르겠다. 너무나 요원한 이상적인 전망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전망의 요체는, 현실의 민주주의가 결코 민주주의의 완성태가 아니기에 끊임없이 그 완성을 바라는 전망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대의 '선민'도 아니오 로마의 '시민'도 아닌 새로운 주체 '그리스도인'에게서 시작된 기독교는 그와 같은 전망을 신학적으로 성찰하기에 적합한 자산을 가지고 있다. 특별히 민중을 새로운 역사의 주체로 인식한 민중신학은 밑으로부터 형성되는 새로운 정치적 주체 탄생의 가능성을 훨씬 적극적으로 통찰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4.        


이상은 지극히 부분적으로, 그야말로 시론적으로 새로운 민중신학의 과제를 설정해본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글의 취지를 다시 확인한다면, 민중신학을 민중신학답게 하는 중요한 하나의 역할을 새삼 확인한 셈이다. 민중신학의 고유성은 민중사건을 중심축으로 하여 부단히 역사에 개입하는 신학적 언어를 찾아나가는 데 있다. 사실 '민중'과 '신학'은 서로 다른 방향을 나타내는 두 축일 수 있다. '민중'은 부단히 구체적 현실에 접근하도록 요구하고, '신학'은 궁극적 지평을 향하도록 한다. 이 두 가지 모순된 축이 '민중신학적 긴장'을 만들어낸다. 민중신학이 '신학'이 아니라 '민중론'에 지나지 않는다는 비판이 오래 전부터 있어 왔지만 그것은 민중신학의 내적 구조를 전혀 이해하지 못한 데서 비롯된 것일 따름이다. 민중신학은 구체성에 접근하면서도 그 구체적인 것을 궁극적 지평에서 바라보는 노력을 계속해 왔다. 그런데 그 궁극적 지평은 우리가 경험해보지 못한 차원이라는 점에서 그것을 '궁극적 가능성'으로 바꿔 이해할 수 있다. 결국 궁극적 가능성을 전제하는 인식이 신학적 인식의 특성이며 그러기에 신학은 급진적이어야 한다. 그러한 의미에서 신학은 늘 현상에 대한 끊임없는 비판을 수행한다. 오늘 시대현상에 대해 개입하는 것도 그러한 차원에서 이루어진다. 이 글에서 내가 말하고자 한 것은, 그와 같은 신학의 급진적 입장에서 현실을 재조명하고 대안을 찾아보자는 것이었다. 그 작은 실마리만을 던진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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