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오늘의 신학동향 - 민중신학' (인터뷰)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20
조회
4274
* 지난 9일 한국민중신학회 세미나 발표가 있고 난 다음에 <기독교신문>에서 서면 인터뷰 요청이 왔습니다. '오늘의 신학동향 - 민중신학' 편을 위해서입니다. 직접 인터뷰했더라면 임기응변으로 간단히 끝났을텐데, 서면으로 하자니 그것도 꽤 진력을 쏟게 하는군요. 그렇다고 만족스러운 것은 아니지만, 서면으로 하다 보니 힘은 더 들었어도 조금 더 생각할 수 있는 여유는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문에는 기자에 의해 재구성된 내용이 실리 터이니, 기왕에 쓴 것 여기에 전문을 그대로 올립니다. 이경석 기자가 저를 부르는 호칭은 신경쓸 것 없습니다. 한신대 외래교수이니 그렇게 부른 것 뿐... 목사면 어떻고 선생이면 어떻고 아저씨면 어떻겠습니까. 그저 그렇게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눈 것이 중요하지요.(041014)


      


1. 교수님께서는 지난 번 민중신학회 세미나를 통해 민중신학의 세계적 지평확산(일국적 차원변혁의 극복)과 민족주의의 탈피를 주장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새롭게 정의될 수 있는 민중신학의 구체적 지향(범주)는 무엇이 될 수 있겠습니까?


- 민중신학의 두드러진 특징 가운데 하나는 시대의 위기에 대해 성찰하고 개입하는 신학적 언어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신학이든 나름대로의 시대인식을 함축할 수 있겠지만, 민중신학은 그 시대인식의 준거점으로 민중사건을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그간 민중신학은 당대의 민중사건을 인식하는 데 주로 한국적 특수 상황을 강조해 왔습니다. 소위 발전도상에 있었지만 여전히 가난한 나라 가운데 하나로서 한국의 현실, 또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가 자리잡고 있는 현실, 게다가 분단되어 있는 현실 등등은 한국의 민중들에게 이중삼중의 고통을 의미했습니다. 그런 사연 때문에 한국 민중의 현실을 말하는 것은 가장 극명한 민중의 현실을 말하는 것으로 국내적 차원에서나 국제적 차원에서 깊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발제문에서 지적했듯이 그와 같은 한국적 상황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그러나 이제 한국적 민중의 문제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닙니다. 70-80년대 한국사회의 맥락에서 '발견'(인식)했던 민중의 문제가 세계 도처에서 발견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또한 한국 민중의 현실이 사실상 단일화된 체제로서 세계 자본주의 안에서 상관관계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 분명히 인식되고 있습니다.

오늘 세계에서는 '반세계화 투쟁'이라든가 '제국에 대한 저항' 등 여러 이름으로 새로운 대안을 찾는 민중운동들이 전개되고 있고 한국의 민중운동 역시 그와 궤를 같이하고 있습니다. 민중신학이 민족주의를 탈피하여 지평을 확산해야 한다는 것은 그와 같은 세계적 민중운동과 연대할 수 있는 언어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전세계적 차원에서 민중들의 '고통의 연대'와 동시에 '희망의 연대'에 의미 있는 신학적 통찰이 필요하다는 뜻입니다. 여기에서 성찰해야 할 많은 과제들이 부상하고 있습니다.


2. 앞서 질문과 연계되는 문제이나 현재 민중신학의 연구와 지평확산에 있어 가장 걸림돌이 되는 부분, 시급한 극복과제라면 어떤 점을 지적할 수 있겠습니까?


- 시대 상황에 대한 인식에서나, 학문적 접근방식에서 단절적 인식을 극복하는 것이 큰 과제입니다. 특히 근대적 학문 분류체계를 절대적으로 간주하는 인식에서 탈피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물의 현상 자체가 여러 요인들의 긴밀한 연관 관계 속에 있다면 그에 관한 인식방법으로서 학문적 접근방식 역시 상호 연관될 수밖에 없습니다. 저는 발제문에서도 이야기했다시피 신학적 인식의 고유성을 부정하지 않고, 각각의 분과 학문들도 나름대로 고유한 인식방법이 있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 고유성만 강조되면 자칫 자기세계에 갇히기 쉽습니다. 시대상황과 소통하고 서로 다른 학문간에 소통하는 언어와 인식방법의 중요성이 강조될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신학이 '천상의 독백' 또는 '게토화된 언어'로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점을 더욱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민중신학은 기독교나 교회만의 신학으로서가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지성사적으로 중요한 의의를 갖는 신학이기도 합니다. 그 유산을 계승해야 합니다. (참조. 교수신문 엮음, 『오늘의 우리이론 어디로 가는가 - 현대 한국의 자생이론』2003, 생각의 나무사).


3. 민중신학에 있어 "교회론의 부재가 민중교회의 실패를 가져왔다"라는 지적이 있어 왔습니다.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와 대안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 그것이 항간의 지적이지만, 저는 좀 달리 생각합니다. 민중신학은 교회론을 갖고 있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고유한 교회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민중사건/예수사건의 현장 그 자체를 교회를 인식하는 급진적인 태도(안병무)만이 전부가 아닙니다. 때로는 아주 구체적으로 새로운 교회의 형태를 거명하는 구체적인 접근방식도 있습니다. 예컨대 서남동 선생님은 기성 교회뿐만 아니라, 실천적인 단체나 기관들, 또는 '목요기도회' 같은 구체적 모임 등도 새로운 '성령의 교회'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 교회론이 기성 교회론과는 다르다는 의미에서 '탈교회적'이기는 하지만, 교회의 의미를 적극적으로 보자면 민중신학은 매우 확대된 교회론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점에서 보자면 기존의 의미에서 교회만이 아니라 다양한 그리스도인의들의 존재방식 그 자체를 교회로 볼 수 있습니다. 그 의의를 적극적으로 평가하지 않고 기성교회만을 전형적인 모형으로 간주한 데서 '민중신학의 실패' 또는 '민중교회의 실패'라는 평가가 제기된 것입니다.

저는 '민중교회의 실패'라고 말할 때, 과연 '실패'라는 진단이 정당한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노동운동의 외곽단체로서 민중교회의 위상을 설정했다면 더 이상 그 역할을 감당할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실패'라고 말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저는 '실패'라기보다는 민중교회 위상의 '전화'라고 진단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컨대 새로운 형태의 지역공동체들로 민중교회가 존속하고 있습니다. 민중의 존재방식도 다양하고, 교회의 존재방식도 다양합니다. 그 점을 유의해서 평가해야 합니다.


4. 현재 한국 신학계에서 진행되고 있는 민중신학의 연구동향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 현재 가장 이슈화되고 있는 민중신학의 주제는 무엇입니까?


- 이 문제는 한마디로 답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제가 발제문에서도 시사했고 다른 글들에서도 밝혔지만, 지금 민중신학은 단일한 민중신학이 아니고 사실상 다양한 민중신학'들'이기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을 세대별로 나누는 것도 그 점을 시사하지만, 민중신학은 그 연륜을 더해가면서 다양한 갈래를 형성하였습니다. 민중사건의 현장으로서 시대상황과의 소통을 중시하는 탈교회적ㆍ탈신학적 경향이 있는가 하면, 기성교회나 서구의 신학 언어에 보다 적합한 형태로 적응하려는 신학적 재구성의 경향도 있습니다. 또한 우리 민족 고유의 유산을 재해석하여 현재적 의미를 탐색하는 경향도 있고, 여성신학이나 종교신학 등과 대화를 중요시하는 경향, 그리고 영성적 신학과의 접맥을 모색하는 경향 등 다양합니다.    

그렇게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공동의 화두를 찾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적 세계화로 인한 죽임의 문화가 만연한 현실에서 생명의 문화를 일구는 것을 커다란 공통의 과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중신학은 다양한 갈래에도 불구하고 또한 공통의 경향성을 띠고 있습니다. 물론 '생명'이라는 화두는 워낙 포괄적고 근본적인 것이기 때문에 그에 대한 관심을 민중신학만의 경향으로 말하는 것은 무리일 것입니다. 그것은 어떠한 신학에서도 이야기할 수 있는 화두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민중신학은 민중사건이 벌어지는 역사적 현실에 대한 구체적 인식 방법 면에서 다른 신학들에 비해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생명이라는 공통의 문제에 접근하는 데 민중신학은 그 점에서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의 체제이자 삶의 방식으로서 자본주의는 죽임의 문화를 양산하고 구조화시키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신학적 성찰이 민중신학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5. 고 안병무 박사님이 주장하신 '민중 메시아론'은 여전히 다양한 논란을 낳고 있습니다. '구원론'과 연관해 이에 대한 교수님의 견해를 말씀해 주십시오.


- 이 문제는 민중신학의 쟁점들 가운데 가장 논란이 심한 주제이기도 합니다. 다른 것은 다 좋은데 바로 이 문제 때문에 민중신학의 입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비판적인 태도를 불러일으킬 정도로 예민한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저는 이 주제가 민중신학을 민중신학답게 하는 중요한 하나의 요소라고 생각합니다.

민중 메시아론이 논란이 되는 것은 민중이 과연 메시아적 역할을 담당할 수 있느냐 하는 점, 나아가서는 그렇다면 민중이 예수 그리스도와 동일시되는 것 아니냐 하는 점 때문입니다. 민중신학은 그렇게 주장합니다. 민중의 역사 주체성을 신뢰하고 나아가 하나님의 계약 파트너로서 몫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와 같이 보는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주장 안에 고유한 민중신학적 인식이 담겨 있습니다. 민중이 새로운 세상을 여는 메시아적 역할을 담당하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됩니다. 그것을 민중신학의 전형적인 언어로 말하면 '민중사건 안에서의 일치/동일시'입니다. 그것은 존재론적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 아닙니다. 구체적인 역사적 지평에서 펼쳐지는 해방사건 안에서 주객이 분리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른바 사건론적 인식에 나온 것입니다. 쉽게 말하면 '예수가 누구냐?' 또는 '민중이 누구냐?'라는 물음의 차원이 아니라 '예수가 무엇을?' 또는 '민중이 무엇을?'이라는 물음의 차원에서 동일시한 것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인식을 더 새롭게 해석할 것 같으면, 민중신학이 이해하는 신앙/믿음의 문제가 분명해집니다. 믿음은 객체화된 대상으로서 예수를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의 삶과 믿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리키는 손가락의 방향, 그것은 예수님 자신의 지향점이며 동시에 민중들의 지향점입니다. 그 점에서 일치합니다. 구원이란 그 지향점, 그 믿음을 따라  살아가는 기나긴 여정입니다.

아마도 민중 메시아론을 논란으로 삼는 가장 주된 이유는 불완전한 존재로서 민중이 어떻게 완전한 메시아의 역할을 담당하느냐 하는 것일 것입니다. 통속적인 표현으로 말하면 죄인이 죄인 자신을 어떻게 구하느냐는 것입니다. 기독교 신학은, 기독교인 일반이 상식으로 알고 있는 것과 달리 바로 그 점과 관련하여 역설과 비약의 논리를 전개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 당신이 죄에 사로잡힌 인간의 현실에 직접 개입해 들어오셔서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다는 것을 말합니다. 죄의 덫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의 현실을 끊임없이 일깨우고 구원의 길을 보여주셨지만, 끝내는 당신이 죄의 덫에 걸려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바로 그 죽음의 사건, 십자가 위에서 구원이 시작된다는 것이 원초적인 기독교 신학의 출발점입니다. 십자가 사건이 구원의 출발점이 되는 것은, 죄의 현실에 사로잡힌 세계의 현실을 완전하게 드러냄으로써 역설적으로 전적으로 그와 다른 구원의 지평을 보여준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일상 안에서 겪는 민중의 고난 역시 동일한 역할을 합니다. 바로 그 고난 때문에 새로운 세계, 구원의 지평을 갈망합니다. 민중신학은 그 점을 예리하게 통찰하고 이를 민중 메시아론으로 발전시킨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서는 독자들을 유념하여 적절히 소화하여 집약해주시기 바랍니다).        


6. 교수님께서 현재 중점을 두고 연구중이신 과제에 대해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 발제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최근에 한국교회 위기론이 제기되면서 온통 '대안교회' '대안신앙'에 대한 모색에 몰두했습니다. 그 과제도 물론 제가 생각하는 민중신학적 과제와 무관하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의 문제를 생각할 때 항상 유념하는 초점이 있습니다. 어떻게 하면 교회 내적으로 소통하는 구조를 갖출 것이냐, 나아가 이 세계와 어떻게 소통할 것이냐 하는 점입니다. 민중신학적으로 말하면, 폐쇄적인 자기 울타리 안에서 벗어나 어떤 형태로든 민중사건의 현장에 동참하는 데 교회의 존재 의의가 있다고 보는 것입니다. 그 점에서 대안적 교회에 대한 모색도 저의 민중신학적 과제 가운데 하나입니다.

그러나 일관된 중요 관심사는, 이미 앞의 답변들에서 시사한 바와 같이, 죽임의 문화를 양산하고 구조화시키는 자본주의 체제를 넘어서는 대안적 삶의 방식을 모색하는 것입니다. 역사적으로 구체화되어 있는 고통의 현실을 직시하면서 희망을 찾는 신학적 작업입니다. 자본주의 체제 자체와 그에 따른 삶의 양식에 대한 비판, 그리고 그것을 뛰어넘는 대안의 제도적인 한 형태로서 민주주의에 대한 성찰, 크게 말해 그와 같은 범주 안에 저의 신학적 관심사가 집약되어 있습니다.        

  

7. 교수님의 약력(저서포함) 부탁드립니다.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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