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시시한 즐거움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27
조회
3706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041024)


시시한 즐거움


목사의 기쁨,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목회의 보람에 있을 것이다. 진실하게 사람을 대하고 진지하게 말씀을 전함으로써 사람들이 위로를 누리고 또 삶의 변화에 이르는 것을 볼 때 그 기쁨이 가장 크다. 그러나 그와 같은 기쁨을 늘 피부로 느끼기란 쉽지 않다. 그 기쁨을 피부로 느끼기란 어쩌면 마치 구름 낀 하늘에 언뜻 언뜻 비치는 햇빛을 바라보는 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그렇게나마 비치는 햇빛을 보지 못해 속타고 마음졸이는 일이 얼마나 많은가. 그래도 그 햇빛을 바라는 마음으로 언제나 스스로를 달래며 맡은 몫을 다하기 위해 흔들리지 않도록 스스로를 훈련해야 한다. 하지만 만일 그런 훈련만이 전부라면, 언제나 '의무감'으로 '사명감'으로 '마땅한 도리'를 추구하는 것이 전부라면, 얼마나 견딜 수 있을까? 그렇게 '천직'을 감당할 수 있다면 그것은 물론 은혜이리라.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다하면서 그 가운데서 기쁨을 맛볼 수 있어야 하겠지만, 때로는 엉뚱한 데서 기쁨을 맛볼 수도 있어야 한다. 아니, 사실 피부로 느끼는 기쁨이란 그렇게 엉뚱한 데서 오는 것이 더 일상적일지도 모른다. '시시한 즐거움', 그렇게 말할 수 있을까? 흔히 '취미'라고도 하는데... 나에게도 물론 익숙한 시시한 즐거움들이 있다. 아니 많다. 내 그 시시한 즐거움 가운데 하나가 교회 강단을 장식하는 일이다. 꽃꽂이를 익혔다든가 다른 비법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저 집에서 정성스레 키운 화분의 꽃들, 나무들을 때에 따라 번갈아 올려놓을 뿐이다.

우리 교회는 10월 셋째 주일을 추수감사절로 지키는데, 그 감사절 장식도 물론 내 몫이었다. 서울 토박이 장인 장모님은 사위를 따라 지금 내가 사는 시골집 옆 동네에 자리를 잡고 집안의 텃밭이며 나무들을 가꾸는 재미로 사신다. 드문드문 열린 감을 보고 감사절에 썼으면 좋겠다는 말만 던지고 지나치고 말았는데, 전날 전화가 왔다. 다른 주일준비로 마음이 분주한 터라 있는 화분이나 올려놓을 참으로 사양을 하고 말았다. 그런데 잠시 되돌아서 생각하니 그게 아니었다. 내 '취미'를 아시는, 신실한 장인 장모님께서는 그 뜰 안의 탐스런 감들이 교회제단에 올려지는 영광을 바라고 계셨던 것이다. 곧바로 마음을 되돌려, 어깨쭉지가 빠져라 감을 따기 시작했고 그것을 지켜본 장인 장모님의 얼굴빛은 잔잔한 미소로 가득했다. 물론 감사절 제단 장식은 대성공이었다. 집에서 거둔 조롱박이며 호박에, 한 교우의 집에서 온 고구마까지 턱하니 올려놓으니 추수의 풍성함을 만끽하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때로는 내가 그 일을 독식해 '성도'들의 몫을 빼앗아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이제는 거의 굳어져 감히 '목사님의 고상한 취미'를 방해하고 싶어하지 않는 듯한 낌새가 느껴질 때면 오히려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나 걱정 마시라! 자신의 기쁨과 그 누군가의 기쁨을 위해 그 일을 하겠다고 나서면 언제든 양보할 의향이 있다. 내가 어째서 굳이 '시시한 즐거움'이라 하겠는가? 그런 즐거움은 얼마든 쉽게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즐거움은 같이 나누기도 쉽고, 남용되어도 나쁘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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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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