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우리말도 모르면서...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30
조회
3570
* <주간 기독교> 목회단상 열번째입니다. (041202)


우리말도 모르면서...


명문은 못 써도 비문은 쓰지 않는다. 평소 내가 글쓰기를 할 때 지키는 원칙이다. 늘 유념하는 원칙이지만 자신이 없을 때도 있다. 실제로 급히 써놓고 다시 읽어보면 심심치않게 비문이 발견되는 경우들이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쓸 때뿐이겠는가? 평소의 언어생활에서도 신경이 쓰인다. 특히 교회에서의 언어생활은 더더욱 신경 쓰인다. 우리 한국교회에서 잘못 사용되는 용어나 표현들이 많다고 하니 어떤 것이 옳고 그른지 늘 따져 본다. 일상적인 언어생활이야 의사 소통하는 데 지장이 없으면 그만이겠지만, 격에 맞지 않는 표현으로 혹시라도 불경을 저질러서는 안 되겠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맙게도 우리말의 올바른 사용법을 늘 일깨워주시는 분이 곁에 계신다. 박창해 선생님, 그분의 이력을 다 열거할 수는 없지만, 한국교회사의 산 증인이기도 하고 국어학자로서 제대로 된 우리말 문법을 정립하기 위해 지금도 애를 쓰고 계신 분이시다. 『표준 새번역』성서의 우리말 자문위원으로도 참여하셨던 선생님께서는 '성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만날 때마다 잘못된 성서 번역문과 교회 예배용어 등을 지적하며 말씀하신다. "우리말도 제대로 모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야 되겠느냐"고 언제나 일갈하신다.

덕분에 우리 교회는 선생님께서 우리말 어법을 제대로 살려 번역하신 주기도문을 예배에서 사용하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오며,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오며,

뜻을 하늘에서 이루신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시옵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내리어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여 주시옵고,

악한 자에게서 구원하여 주시옵소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이옵나이다.

아멘.


피동문과 사역문이 뒤섞여 있고 잘못된 표현(예컨대 '여김을 받으시오며')이 들어 있는 기존의 주기도문을 사역문으로 일관되게 고쳐 우리말답게 바로 잡은 주기도문이다.

은퇴하신 후 우리 동네 곁 한적한 동네에 자리를 잡으신 선생님께서는 다니시는 교회가 따로 있지만, 종종 우리 교회에 오셔서 같이 예배도 드리고 또 말씀도 전해주신다. 매 주간 보내드리는 교회 주보를 처음부터 끝까지 꼬박꼬박 읽고 계셔 보이는 가운데서나 보이지 않는 가운데 늘 우리말 선생님 몫을 해 주신다. 나와 우리 교회로서는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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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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