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목사님, 시방 뭐 하는 겁니까?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1:02
조회
3843
* <주간기독교> 목회단상01 (2004.6)


"목사님, 시방 뭐 하는 겁니까?"


우리 교회에는 뒤집어진 현상이 몇 가지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여신도보다 남신도가 많다는 것이다. 흔히 교회에서는 여신도가 많고 남신도가 그에 못 미치는데 우리 교회에서는 거꾸로다. 남자 홀로 아이들마저 주렁주렁 데리고 오는 경우가 오히려 흔한 풍경이다. 그러니 흔히 교회에서 '믿지 않은' 바깥 사람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관례이지만 우리 교회에서는 정반대로 안 사람을 위해 기도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목사에게 여성적 매력이 있어서 남자들이 꼬이는지, 아니면 목회가 너무 남성적이어서 구미에 맞는 남자들이 꼬이는지 수수께끼다.

그렇게 남신도들이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교회 안에서 영향력은 또 뒤집어져 있다. 신도회 활동은 여신도가 더 활발하고 사회선교비도 더 많이 낸다. 다수임에도 불구하고 사실상 '소수자'로 전락한 남신도의 위상은 주방 일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난다. 설거지가 전적으로 남자들의 몫이다. 앞치마를 두른 남정네들이 주방에서 설치는 풍경이 우리에게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언젠가 남신도들이 볼멘 소리로 설거지는 왜 남자만 해야 하느냐고 항의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그 때 여신도들은, 평소 집안에서도 주방 일을 열심히 거든다는 확인을 받아오는 남신도에 한해서는 가끔 면제해줄 수도 있다는 현명한 제안을 내놓았다. 그러나 그 확인을 받아온 남신도가 한 명도 없어 다들 평소에 집안에서는 주방 일을 잘 하지 않는다고 믿게 되었고 오늘도 남신도 설거지 원칙은 요지부동이다.

그런데 아뿔사, 그렇게 기존의 성 역할을 바꿈으로써 교회 안에서 양성평등의 문화적 기풍을 세울 수 있다는 확신으로 그 원칙을 수립하는 데 기여한 목사에게 위기가 닥쳤다. 교회 안에서 목사에게는 설거지가 면제되었다. 그 이유로는 목사는 중성이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새로운 교우들과 대화의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는 설도 있다. 아무튼 그 덕에 교회 안에서 주방 일이 면제된 목사에게 집안에서 위기가 닥쳤다.

어느 날부터인가 마나님께서 "나도 누가 차려주는 밥좀 먹어봤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밥상에 교란이 일어났다. 진밥 꼬드밥이 두서없이 출몰하는가 하면, 어떤 때는 싱겁기 그지없고 없고 어떤 때는 짜기 그지없는 반찬이 마구 엇갈렸다. 치밀한 음모의 결과인지 아니면 주방권태 증상으로 빚어진 사태인지 알 수 없으나, 결국 합의하고 말았다. "앞으로 한 달간, 아니 일 주일간 주방 일은 내가 하지!"

벌써 일 주일을 넘기고 열흘을 넘겼다. 교회 안에서 면제된 주방 일, 집안에서는 피하지 못했다. 우리 집 세 여자들은 너무 맛있다는 둥 너무 즐거워하는 것 같다는 둥 감탄사를 연발하여 나를 주방 일에 계속 묵어두려고 하고 있고, 교회 여신도들은 목사님이 만든 찌개를 먹어보고 싶다고 은근히 찔러댄다.

그 덕에 양성평등의 문화에 지대한 기여를 한 것으로 상이라도 받는다면 그나마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그러나 지금 나는 "목사님, 시방 뭐 하는 겁니까?" 항변하는 듯한 남신도들의 눈총이 따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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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묵 / 천안살림교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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