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단

위험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05-07-26 20:23
조회
4104
<충남시사> 2003.04.12. 칼럼


위험사회에서 살아남는 법


최형묵(천안 살림교회 담임목사 / 본지 칼럼위원)


오늘의 사회를 일러 어떤 학자는 '위험사회'라 한다. 재수 없는 사람이 위험에 처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는 사회라는 진단이다. 또 다른 학자는 현대 국가의 모든 국민들은 '전장(戰場)의 기억'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국가간의 국익을 둘러싼 분쟁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실제 전시든 비전시든 전쟁을 당연한 것으로 간주하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우리는 오늘 그 사실을 너무나 분명하게 체감하고 있다. 대구지하철 참사의 기억이 사라지기도 전에 우리 지역 천안초등학교 축구부 어린이들의 화재 참사가 일어났다. 참사가 일어날 때마다 그 원인은 대개 밝히 드러난다. 그러나 그 원인규명에 상관없이 참사는 계속된다. 저 이라크에서 벌어지고 있는 참혹한 전쟁도 결코 남의 일만은 아니다.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명분 없는 전쟁이라고 반전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사람들은 이미 그 비극적 상황을 일상으로 체험하고 있다. 국익을 내세우는 정부의 태도에서만이 아니다. 전쟁의 사태가 우리에게 줄 득실을 계산하는 모든 의식 가운데 전쟁은 이미 일상으로 자리잡고 있다.

결코 일상이어서는 안 되는 사태를 일상의 평범한 일로 경험해야 하는 사태의 근본 원인은 무엇일까? 그 근본 원인은 경쟁과 효율을 최우선시해 온 오늘 우리의 삶의 양식과 그것을 당연시해 온 우리의 내면의식에 있다. 참사의 배경에는 항상 비용 문제가 게재되어 있다. 그것은 당연히 경쟁과 효율의 문제와 직결된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내기 위한 오늘의 경제법칙이 바로 사람들에게 안전 불감증을 당연시하게 만든다. 전쟁의 비극 또한 마찬가지다. 다소(?) 희생이 따르더라도 효율적인 세계경영을 위해서는 걸림돌을 제거해야 한다는 논리에 충실한 것이 전쟁이다. 그것을 세계평화를 위한다고 거짓 명분으로 포장하지만 그 속내는 바로 그 논리다.

우리는 그러한 논리를 내면시하고 당연시해 왔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누구나 자신의 안전을 기대하는 모순 속에 살고 있다. 그러나 그와 같은 냉혹한 삶의 논리가 지배하는 한 그 누구도 안전할 수 없다. 그 누구도 예외가 되지 않지만, 그 위험 사태, 그 비극이 일상화되어 있는 현실에서 가장 어려운 이들은 언제나 사회적 약자이다. 여성과 어린이들이 겪는 고통, 그것을 우리는 이라크 전쟁에서도 천안초등학교 참사에서도 확인한다. 이 사실은, 거꾸로 말하면 여성과 어린이들이 안전하면 세상이 안전하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확인해준다. 장애인 편의 시설은 장애들에게만 편한 것이 아니다. 장애인들에게 편하면 비장애인들에게는 더더욱 편한 것이다.

결국 우리 모두가 위험한 사회에서 비극의 현장에서 탈출하는 길은 적자생존의 논리를 극복하는 데 있다. 어린이와 여성, 그리고 장애인과 그 밖의 사회적 약자들을 우리 시선의 중심부에 세울 때 우리 모두는 안전해질 수 있다. 한마디로 건강한 사회의 지표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력에 있다. 경쟁과 효율을 내세우는 삶의 방식이 아니라 존중과 협동을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경쟁과 효율을 일상적 경험으로 체득한 사람은 평생 그렇게 살아갈 수밖에 없고 그것을 정당화하는 사회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 반면에 신뢰와 사랑, 그리고 존중과 협동을 일상의 덕목으로 체득한 사람은 스스로 그렇게 살아갈 뿐 아니라 냉혹한 현실에 이의제기를 함으로써 세상을 바꾼다.

그 점에서 최근 우리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의미 깊은 일들에 주목한다. 냉혹한 국익 논리를 따라 명분 없는 전쟁에 우리의 젊은이들을 전장에 보내겠다는 정부와 국회의 결의에도 불구하고, 전쟁반대와 파병철회를 외치는 시민들이 있다. 저마다 자기가 가진 것을 자랑하고, 봉사와 헌신을 강조해야 할 종교들마저도 교세 자랑에 급급함에도 불구하고, 서로에 대한 존중과 협력을 다짐하는 종교인들('천안지역종교지도자협의회')도 있다. 사회로부터 그리고 심지어는 가정에서도 따듯한 시선을 받지 못해 메말라 가는 어린이들이 방치되어 있는 현실을 안타까워해, 그 어린이들의 미래를 열어 나가려는 지역 단체('미래를 여는 아이들')도 탄생했다. 바로 그와 같은 노력들이 우리의 일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한 노력이 우리 모두를 안전한 삶으로 인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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