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수요성서연구 - 갈라디아서에 들어가기 전에..

작성자
이지수
작성일
2013-11-14 14:29
조회
1172
수요 성서 연구를 갈때마다 (물론 띄엄띄엄 갑니다만) 오고가는 이야기들이 너무 주옥같은데 그걸 저만 누리고 오기가 아쉬웠습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사모님한테 말씀드리니까 성경 공부 끝나고 오고간 내용을 정리해서 홈피에 올리면 어떠냐고 하셔서 일단, 어제 공부 내용을 올렸습니다.

목사님 올려주신 성서연구 내용에 댓글로 달았는데 거기는 글씨만 올릴수 있게 되어 있어서

정리하면서 찾아놓은 각주나 지도가 올라가지 않네요.

파일을 올릴 수 있는 곳은 여기 뿐이라 일단, 여기 올려봅니다.


일상적인 이야기들이 오가는 마당이라 다른데 올릴 수 있으면 좋을텐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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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형묵님에 의해서 게시물 복사되었습니다 (2013-11-21 11:36)
첨부파일 : 갈라디아서1_1113.hwp
전체 4
  • 2013-11-14 14:30
    1) 수요 성서연구를 하면서 너무 좋은 시간인데 그냥 달랑 두시간 하고 오는게 아쉬워서 되새김질 삼아서 출석 할때만이라도 오고갔던 이야기들을 정리하고 싶어져서 이렇게 올립니다. 지식이 일천해서 틀린게 많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과 교우여러분들의 첨삭 부탁드립니다.
    rn
    rn2) 정리하면서 지도도 첨부하고 각주도 썼는데 파일 형태로 못 올리니까 다 사라져 버리네요. 파일을 올릴 수 있는 데는 자유마당뿐이라 거기다 올렸습니다. 다른데 올리라시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 2013-11-14 14:41
    <갈라디아서 읽기를 시작하며> 11월13일
    rn1) 오늘의 성경 공부에 대한 추가 설명 내용들
    rn- 갈라디아서는 ‘바울의 진검’ , ‘날선검’이라고 하는 이유
    rn: 2장에 나오는 베드로와의 대결등, 사도들간에 입장차이와 갈등, 그 과정에서 바울의 입장이 극명하게 드러나기 때문
    rn: 율법 때문에 복음의 본질이 훼손되는 것을 지적하고 다시 율법으로 회귀하는 자들에게 맞서는 바울의 입장이 드러남
    rn
    rn- ‘인의론’ :
    rn:인의론은 믿음으로서 의롭게 되고, 그로인해 구원받는다는 내용
    rn:도나티스트와 아우구스티누스 논쟁
    rn- 각 사람의 자유의지와 엄격한 실천이 중요하다고 주장한 도나티스트와 인의론을 주장한 아우구스티누스/ 박해시대의 변절자(신도+사제)에게 세례 받은것이 유효하냐 무효하냐의 논쟁
    rn- 다시 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 도나티스트들에 반해 아우구스티누스는 인간의 공로가 아닌 하나님의 은총이므로 유효하다고 주장
    rn: 루터- 오직 성서, 오직 믿음, 오직 은혜로 율법이 아닌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 사람이 의로워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의롭다고 인정해줌으로써 구원받는다.
    rn
    rn- 흔히 인의론은 믿음만 있으면 실천이 없어도 된다는 식으로 인간의 무력함을 강조하고 책임을 무시하는 앙상한 교리로 오도되어 왔다. 하지만 바울의 인의론은 의롭다고 인정받았으므로 의로움에 가까워지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고 성령의 열매에서 설명하고 있다.
    rn- 인의론의 등장을 당시의 상황에 맞춰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rn기독교의 명확한 성립은 기원후 80년경, 바울이 갈라디아서를 쓴 54~55년경은 유대교 회당에서 활동하던 시기. 바울은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를 중심으로 선교활동을 해왔다.
    rn유대인은 민족의 정체성을 없애려는 제국의 정책에 따라 앗시리아의 북이스라엘 분리(사마리아의 기원), 바빌론 포로 시절에 사회지도급 인사들이 포로로 끌려간 후 본토에 남아있던 사람들이 세계 각국으로 흩어지면서 민족국가가 소멸되었다. 하지만 유대인은 종교적 제례를 지키며 유대인으로서의 정체성을 지켜왔다.
    rn하지만 유대인의 종교적 제례는 공간적 제약이 있는 의례가 아니라 말씀과 율법이라는 추상적인 도구로 정체성이 유지되어 왔다. 그래서 더 강력하고 오랫동안 정체성의 유지가 가능했다. 유대교 회당은 사실상 제의기관이라기 보다는 교육기관으로서의 성격이 더 강했다.
    rn
    rn- ‘기독교인’의 개념은 안디옥에서 AD80년 정도에 확립. AD70년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가 유대교에서 그리스도교가 완전히 독립하는데 큰 영향을 미친다. 성전이 있는 동안에는 성지순례나 전통 제례를 통해 정체성을 확인하던 유대인 공동체가 율법과 말씀으로 정체성을 확인할 수밖에 없게 됨. 그래서 그때 편집된 게 성서.
    rn구약성서가 그때 편집되고 더 철저하게 율법이 강조된다. 이전의 성경은 랍비들만 아는 상황. 성서는 히브리어로 씌여졌는데 히브리어는 이미 생활언어로서 사용되지 않았고, 팔레스타인은 아람어를, 로마는 헬라어를 사용.
    rn히브리 성경을 아람어와 헬라어로 번역해서 유대인 지역은 성서를 39권으로, 디아스포라에서는 15권을 추가해 사용.
    rn
    rn-본토가 아닌 각국에 흩어져 있는 유대인 공동체, 즉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가 바울의 주 활동무대였다. 디아스포라 유대인 공동체에는 유대인, 개종자,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등으로 구성되어 있는데(묘비명을 통해 알 수 있음) 문제는 이방인으로서 개종해 유대인 공동체로 들어온 사람들이었다. 로마시대 유대인 공동체는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공동체였다. 조세도 개인이 아닌 회당을 중심으로 한 집단에서 징수했고 군역도 지지 않았다. 종교집단을 넘어선 자치 집단으로 인정받았다. 이방인들 중에는 유대인 공동체의 보호망 안에 들어오려고 개종한 사람들이 있었다.
    rn유대인 개종자인 이방인들은 대부분 약자들이었고(이에 반해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는 개종자보다는 사회적 지위가 높은 유대교에 우호적인 사람들을 일컬었음) 이들은 사회에서 뿐 아니라 유대교 회당에서도 약자의 위치였다. 특히 정통주의 유대교에서는 할례등 율법을 지키는 것을 강조했고 유대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율법이 몸에 배어있기 때문에 성인이 되어 개종한 이방인의 경우 공동체 안에서 입지가 점점 약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율법을 지켜야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바울의 인의론은 약자들을 옹호하고 대변하는 주장으로 제기 되었다. ‘인권론’으로서의 의의를 지닌 것이다( by 김창락)
    rn
    rn2) 우리끼리 나눈 이야기들
    rn- 인의론이 실천없는, 무책임해도 된다는 식으로 전파되고 있는 한국 교회의 문제점
    rn- 사회적, 역사적 배경없이 성경을 외우면 된다, 의심하면 안된다고 가르치는 것이 문제일 듯.
    rn- 결국 교육이 문제인가?
    rn- 우리 교회 안에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rn- 한국 교회는 교리가 아니라 매뉴얼화 되어있다.
    rn- 등등..
    rn
    rn

  • 2013-11-14 20:02
    인의론을 찾다 보니... 리부팅 바울 리뷰등에서는 '의인론'이라고 했던데 그게 다른건가요? 아니면 같은건데 이리 쓰나 저리 쓰나 같은 뜻이라 둘다 쓰고 있는 말인가요?

  • 2013-11-14 21:07
    '인의론'(認義論), '의인론'(義認論), '이신득의론'(以信得義論)이 혼용되고 있습니다.
    rn어느 게 가장 적절한 번역어인지는 국어학적 자문을 받아봐야겠습니다.

천안살림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