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32] 양 한 마리의 의의(105~107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3-05-08 21:58
조회
1036
천안살림교회 2013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3년 5월 8일 / 최형묵 목사



제32강 양 한 마리의 의의(105~107절)


105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아는 사람, 그가 창녀의 아들이라 불릴 것입니다.”

106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둘을 하나로 만들면 여러분은 사람의 아들이 됩니다. 여러분이 ‘산아, 움직여라.’고 하면 산이 움직일 것입니다.

107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나라는 양 백 마리를 가지고 있는 목자와 같습니다. 무리 중 제일 큰 한 마리가 길을 잃었습니다. 목자는 아흔아홉 마리 양을 놓아 두고 그 한 마리를 찾으러 나갔습니다. 이런 어려움을 겪은 다음 그는 그 양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아흔아홉 마리보다 너를 귀히 여긴다.’고”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김용옥, <도마복음 한글 역주 3> 참조]



105.

* 창녀의 아들: 상당히 거북스러운 비유. 이 이야기에는 당대의 신화적 관념과 풍속에 따른 통념이 착잡하게 얽혀 있음. 마술사 시몬이 데리고 다니는 창녀 헬레나 이야기(천상의 존재에서 지상의 존재로 갇혀 세상의 모든 자식을 낳은 여자)에서 볼 수 있는 신화적 관념, 또한 사랑 없는 성관계에 관한 통념, 아비를 모르는 자식을 낳은 창녀에 관한 통념 등이 반영되어 있음. 예수 자신도 로마병정 판테라와 마리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도 있음. 그 배경에 복잡한 신화적 관념 내지는 풍속에 따른 통념이 깔려 있다 하더라도, 이 이야기의 의미는 그렇게 어려울 것 없음. 육신의 아버지와 어머니만을 아는 데 그친다면 창녀의 아들과 다를 바 없다는 것. 101절에서 아버지와 어머니를 미워해야 한다는 것과 아버지와 어머니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 대비되는 의미, 그리고 낳아 준 어머니와 참 생명을 준 어머니가 대비되는 의미를 생각하면 될 것. 또한 곧바로 이어지는 106절의 ‘사람의 아들’과 대비되는 의미의 ‘창녀의 아들’의 의미를 생각하면 그 뜻을 충분히 헤아릴 수 있음. 육체의 한계 안에 갇힌 인간의 삶을 말함.


106.

* 사람의 아들: 둘이 하나 되어야 한다는 것은 도마복음서가 일관되게 강조하는 초점. 영적 자아와 일치되는 삶. 아버지와 하나 되는 나. ‘제 나’를 극복한 ‘얼 나’. 그 때 비로소 진정한 ‘사람의 아들’이 된다는 것. 그 의미는 86절에서 말하는 ‘사람의 아들’과 일치. 그것은 예수 자신을 일컫는 말이며 동시에 진정으로 사람다운 사람이 되는 모든 사람을 일컫는 말. 육적 주체와 영적 주체의 합일. 육체적 존재와 영적 주체의 합일. 물리적 세계와 영적 세계의 합일. 그 때 세상의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 신학자 폴 니터의 일화: 1980년대 엘살바도르에서 독재권력에 의한 학살이 자행되고 있을 때 ‘살바도르의 평화를 위한 크리스천’ 활동을 하던 폴 니터. 명상을 하고픈 마음과 현지에 가서 살인을 멈추게 하고픈 마음의 충돌. ‘그 둘을 해야 한다’. 가가와 도요히코(賀川豊彦): “예수 종교의 위대함은 그의 가르침이 우수한 데 있지 않고, 그의 인식이 하나님의 그것과 하나라는 것 그리고 십자가 위에서 끝마친 짧은 삶에서 사람이 실현할 수 있는 모든 정신적 발달을 체현하는 데 있었다.”


107. (* 유사병행구: 마태 18:12~14, 누가 15:4~7)

* 양 한 마리의 의의: ‘길 잃은 양’ 이야기로 매우 익숙한 이야기. 마태에서는 바리새인들을 질책하는 맥락에서 죄인을 구하러 온 역할을 강조, 누가에서는 제자들과 대화하는 가운데 한 영혼의 소중함을 강조. 마태와 누가의 공통점은 양 100마리 모두에 대한 보편적 관심의 맥락. 단 한 마리라도 소홀히 할 수 없다는 보편주의적 가치. 바로 그런 의미에서 기독교 신앙의 정수를 말하고 있는 것으로 간주됨. 그러나 도마의 이 구절은 그와는 상당히 다른 내용. 아흔아홉 마리보다 한 마리의 소중함을 말하고 있음. 아흔아홉 마리와 비교가 안 되는 한 마리. 이 이야기는 8절의 물고기들 가운데 큰 물고기 하나 고르는 어부 이야기, 76절의 진주를 발견한 상인 이야기와 상통. 결국 아흔아홉 마리의 양은 일상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군중 속에 파묻혀 사는 비본래적 자아를 말하는 반면 한 마리는 본래적 자아를 상징하는 것으로 진정으로 아버지와 하나된 삶의 모습을 말함. “저 광야를 가는 코뿔소의 외뿔처럼 홀로 가거라.” 그 의미를 연상. 도마복음과 다른 복음서의 전승의 관계를 감안하여 도마의 전승이 본래적이고 다른 복음서의 전승이 변용된 것으로 볼 때, 다른 복음서의 변용은 탁월한 창조적 변용이라 할 것. 많은 경우 왜곡을 동반하였지만 이 경우에는 다른 차원으로 의미를 증폭시킨 경우라 할 수 있음.  



* 다음 제33(5/15) 주제는 “감추어진 보물의 발견”(108~110)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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