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서연구

[도마복음서 16]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49~52절)

작성자
최형묵
작성일
2012-10-24 21:58
조회
1061
천안살림교회 2012년 수요 성서연구

도마복음서 읽기 / 매주 수요일 저녁 7:30

2012년 10월 24일 / 최형묵 목사


제16강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49~52절)



49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이는 행복합니다. 나라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와서 그곳으로 돌아갑니다.”

50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이 여러분에게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그들에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빛에서, 빛이 스스로 생겨나 확고히 되고, 그들의 형상으로 나타나게 된 그곳에서 왔다.’라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그것이 너희냐?’ 하고 묻거든 이렇게 말하십시오. ‘우리는 그[빛의] 자녀들로서, 살아계신 아버지의 선택받은 사람들’이라고. 그들이 여러분에게 ‘너희 속에 있는 너희 아버지를 입증할 증거가 무엇이냐?’ 하고 묻거든 그들에게 말하십시오. ‘그것은 움직임과 쉼’이라고.”

51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언제 죽은 사람들의 쉼이 있겠으며, 언제 새 세상이 이르겠습니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이 기다리는 것이 이미 와 있지만, 여러분들이 이를 알지 못하고 있을 뿐입니다.”

52 제자들이 예수께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에서 스물네 명의 예언자들이 말했는데, 그들이 모두 주님에 대해 말했습니다.” 예수가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과 함께 있는 산 사람은 무시하고 죽은 사람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 오강남, <또 다른 예수>에 실린 본문


49.

*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사람: 홀로 된다는 것은 도마복음서에서 누차 반복하고 있는 중요한 모티프(4, 6, 23, 75)로서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의 의미. 택함을 받는다는 것 역시 자주 등장하는 모티프로서(8, 23, 50), 예정에 관한 것이라기보다는 희소성을 뜻함. 다시 말해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신 앞에 선 단독자로서 온전한 깨달음에 이르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을 말함. 여기서 중요한 사실은 홀로이며 택함을 받은 사람이 나라를 발견한다는 것. [하나님] 나라에서 왔고 [하나님]나라로 되돌아갈 본성을 지닌 인간. 성선설(性善說). 그런데 그 본성을 구현하는 사람은 드물다는 것.


50.

* 어디서 왔느냐고 묻거든: 선문답 또는 교리문답과 같은 형식의 대화로서, 앞의 구절과 그 의미가 직결되고 있음. 사람은 본시 빛에서 왔고, 빛의 자녀로서 아버지의 선택을 받음. 여기서 앞 구절의 ‘나라’가 ‘빛’으로 대치되었을 뿐 그 의미는 상통. 역시 도마복음서에서 빛의 모티프는 자주 강조되지만, 여기서는 깨달은 인간의 역할을 지시하는 차원을 넘어 인간의 본성 자체를 지시하는 의미로 등장. 예수만이 배타적 의미에서 빛의 아들이 아니라 따르는 무리들, 나아가 인간 자체가 빛의 자녀라는 의미. 스스로 존재하고 자립하는 빛의 성격은 앞 구절에서 말한 단독자와 같은 의미. ‘나는 나’(출애 3:14).

* 움직임과 쉼: 빛의 자녀라는 사실, 아버지가 임재한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표로서 움직임과 쉼. 움직임과 쉼은 생명활동의 기본적인 양태로서 살아 숨쉬고 움직이는 것을 말함.  창조세계의 원리. ‘동(動)’과 ‘정(靜)’이 조화를 이룬 상태. 살아 있다는 것의 실상. 그것이 비단 몸뚱어리가 살아 있다는 것만 말할까?  


51. (* 유사병행구: 누가 17: 20~21, 요한 5:24~25)

* 진정한 쉼과 새 세상: 앞 구절의 움직임과 쉼에 관한 이야기는 이 구절에서 진정한 쉼과 새 세상에 대한 기대로 연결되고 있음. 여기서는 쉼이 강조되고 있는데, 그것은 지금 세상의 삶이 쉼이 없는 상태라는 것을 반증. 그래서 새 세상에 대한 기대는 쉼이 보장받는 것으로 표현. 제자들의 물음에서 ‘죽은 사람들의 쉼’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죽은 사람들의 부활’을 말한 당시의 통념을 반영한 것일 수도 있지만, 쉼이 없는 사람들의 삶은 죽은 것과 다름없다는 것을 말한다고 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그렇게 볼 때 앞 구절과의 의미 연관이 더욱 뚜렷해짐. 제자들의 물음에 대한 예수의 답은 지금 그 새로운 세상이 와 있지만 사람들이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다는 것. 종말론적 관점에서 말하자면 ‘실현된 종말론’에 해당. 이 말씀은 지금 당장 스스로의 삶을 온전히 향유할 것을 말하는 것. 그 어떤 것으로도 유보될 수 없는 삶.  


52.

* 지금 여기 살아 있는 사람: 앞의 구절이 미래에 저당 잡힌 삶과 관련되어 있다면 이 구절은 과거에 사로잡힌 삶과 관련되어 있음. 구약과 신약의 연속성과 단절성에 관한 문제는 매우 중요한 신학적 논란의 대상. 여기서는 단호하게 단절을 말하는 측면이 두드러짐. “첫번째 언약에 결함이 없었다면 두 번째 언약이 생길 여지가 없었을 것입니다.”(히브리서 8:7). 어떤 외적 권위에도 의존하지 않고 지금 스스로 살아있는 사람을 주목할 것을 요구하는 말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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